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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美에 ‘護憲지지’ 요구하다 퇴짜…25만쪽 외교문서 공개

전두환, 美에 ‘護憲지지’ 요구하다 퇴짜…25만쪽 외교문서 공개

입력 2016-04-17 14:05
업데이트 2016-04-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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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18 항쟁 후 “전두환 대통령 불가피하며 다른 대안 없다”

1985년 당시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5공화국 헌법에 대한 개헌 요구가 거세지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호헌’(護憲, 5공 헌법 수호) 공개 지지 표명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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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17일 공개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1985년 방미 관련 외교문서.  전두환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호헌’(護憲)에 대해 공개 지지표명을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전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에게 직접 ’헌법 수호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이 확고하게 지지하는 성명을 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미측은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며 끝까지 난색을 보였다.       한편, 노신영 당시 국무총리는 같은 해 10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간담회에서 미국 의원들의 정치발전 및 인권 관련 질문에 ”김치와 콩나물국을 먹는 한국인에게 매일 치즈와 버터, 우유를 먹도록 강요한다면 소화를 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1985년 방미 관련 외교문서.
전두환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호헌’(護憲)에 대해 공개 지지표명을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전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에게 직접 ’헌법 수호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이 확고하게 지지하는 성명을 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미측은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며 끝까지 난색을 보였다.
한편, 노신영 당시 국무총리는 같은 해 10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간담회에서 미국 의원들의 정치발전 및 인권 관련 질문에 ”김치와 콩나물국을 먹는 한국인에게 매일 치즈와 버터, 우유를 먹도록 강요한다면 소화를 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는 17일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총 1천602권, 25만여 쪽에 달하는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 ‘김대중 귀국’ 등 1985년에 생산된 문서가 중심이며, 1980년과 그 이전의 외교문서 가운데 일부도 재심의를 통해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4월 24∼29일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발표 과정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해줄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요청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요청은 같은 해 ‘2.12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신민당 돌풍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진 시점에 나온 것이다.

같은 해 4월 초 양국 정상간 언론발표문(press remarks) 교섭에 들어간 우리 정부는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할 문안에 전 대통령의 ‘헌정수호 결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했다.

전 전 대통령은 4월 12일 주한 미국대사와의 오찬에서 직접 ‘헌법 수호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이 확고하게 지지하는 성명을 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25일 저녁 미국 현지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동에서도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은 전 전 대통령이 헌정질서 유지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거듭 지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배석한 폴 월포위츠 국무부 당시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 내에서 헌법 개정 문제가 정치 문제화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결국, 최종 발표문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헌법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한 제반 조치를 지지하고,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하겠다는 평화적 정권교체 공약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차 강조”하는 선에서 타결됐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키고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는 내용의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개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도 어쩔 수 없이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같은 해 6월 29일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6. 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아울러 미국이 5·18 민주화 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1980년 8월 29일 당시 박동진 외무부 장관과 면담에서 “미국 행정부는 이번(에) 전(두환) 장군께서 대통령에 취임하시게 됨은 한국의 국내 정세 흐름으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며,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므로…”라고 말했다.

또 1982년 망명길에 올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5년 2월 총선 직전 귀국을 선언하자 한미 정부가 귀국 연기를 종용하기 위해 긴밀히 협의한 상황도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 측에 귀국 연기를 설득하는 한편, 한국 정부에도 사면, 유럽 방문 허가 등 상응하는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총선에서의 악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고, 미 정부는 일종의 중재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귀국 문제가 그해 4월로 협의가 이뤄지던 전 전 대통령의 방미(일명 ‘태평양 계획’)에 영향을 줄 것을 극도로 우려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와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시정 요구를 ‘북한이 한일간 이간을 노리고 배후 조종한 데 따른 행위’로 규정하고, 국내 언론의 관련 보도를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 전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고교용 역사교과서 검정 내용을 공개하기 4달 전인 1984년 2월6일 외무부에 대응 지침을 담은 자필 문서 한 장을 내려보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일본 역사교과서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북한이 조총련과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 등을 이용해 한일간의 이간을 노리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의 언론은 이에 편성하지 않도록 협조하시요”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전 전 대통령은 1984년부터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은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그해 1월 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북관계를 계속 예의주시하고 1984년 9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모처럼 이뤄진 양국 간 좋은 관계가 일본 측의 필요 이상의 대북 접근을 통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이밖에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가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사실을 알리면서 김 주석이 자신에게 “소련은 믿을 수 없고, 중공(중국)은 믿지 않는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 이래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가운데 2만여권, 270만여쪽을 공개했으며, 앞으로도 국민 알 권리와 학술연구 등을 위해 보존기한이 지난 외교문서를 심사를 통해 지속해서 공개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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