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300명 끌고갔다는 日관동군건설부대 명단에 ‘조선인 제로’

300명 끌고갔다는 日관동군건설부대 명단에 ‘조선인 제로’

입력 2016-04-08 09:23
업데이트 2016-04-08 09:23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일본·만주로 배치된 조선인 군인·군무원 명단 대거 ‘증발’

일본인 역사 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 씨 논문을 통해 일본 정부가 보유한 조선인 군인·군무원(군속) 명단에 큰 구멍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일제 강제동원 진상규명의 필요성이 재삼 지적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56년 자체적으로 약 37만 명의 조선인 군인·군무원 동원 통계를 냈지만 한일 협상이 한창이던 1962년 단계에서는 명부상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13만 명을 제외한 채 24만 명으로 재집계했다는 것이 다케우치 논문의 골자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그 ‘24만 명’의 근거가 된 명부를 한국 정부에 넘겼지만 ‘13만 명’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교정상화(1965년) 이후 51년이 지나도록 식민지 국민으로서 억울하게 전쟁터로 끌려간 조선 민중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한일간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만 반복 표명하며 덮으려 했고, 한국 정부도 지난 20년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대일 외교의 축을 군위안부 문제에 뒀기에 일본 정부 차원의 강제징용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케우치 씨 같은 민간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다케우치의 논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일본과 만주로 끌려간 조선인 군인·군무원의 명단 소실률이 특히 높은 점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인·군무원의 경우 명부에 이름이 남은 사람이 약 1만 8천명인 반면 명부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 4만 3천 명에 달했고, 만주는 명부상 이름이 확인된 사람이 1만 4천 명,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4만 3천 명이었다.

특히 부대별 집계에서 관동군(만주에 주둔한 일본 육군부대) 야전병기창(廠)의 부대 자료에는 2천 500명의 조선인을 동원한 것으로 돼 있는데, 명부상 남아 있는 인원은 1.9%인 48명에 그쳤다.

또 부대자료상 조선인 각 100명씩 배속된 것으로 돼 있는 관동군 제1∼3건설대의 경우 명부에 조선인이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 가족이 만주 등지로 동원된 강제 징병 피해자 유족 다수는 피해 사실을 입증할 기록조차 찾을 수 없었다. 명단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탓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 요구 운동을 벌이거나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곤란을 겪어야 했다. 또 전쟁터에서 숨진 징병 피해자가 명단에서 누락된 경우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유족들이 알 길이 없기에 유골 수습은 커녕 기일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이와 관련, 다케우치는 우선 실제로 동원한 조선인 군인·군무원 수와 명단으로 확인한 수 사이의 차이를 일본 정부가 인식하고도 한국 측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케우치는 “종전후 재향군인 업무를 담당하는 ‘유수(留守) 업무부’가 만주로 동원한 조선인에 대해 부대 원부(原簿)상의 수와 유수명부(일본 후생성이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병된 한국 군인·군무원 등의 병적<兵籍>을 일본 부대장들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한 문서)상의 수를 비교한 자료를 발견했다”며 “후생성이 명부상 확인되는 사람 수만 제시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부에 조선인 군인·군무원 통계치를 밝히고 명부를 전달했을 때, 일본 정부는 ‘명부에 없는 사람이 있어 24만 명만 제시했다’는 점을 처음부터 밝혔어야 했다”며 “그것은 명부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구제에도 연결되는 문제”라고 부연했다.

더불어 일본 정부가 이제라도 관련 자료를 전면 공개하고 조사함으로써 조선인 강제동원의 실태 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한 명단의 ‘배경’을 놓고 전쟁 막판 전세가 악화하는 와중에 기록 작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과 종전후 소각됐을 가능성 등이 거론되지만 그 문제를 따지기 앞서 현재 일본 정부가 보유한 자료를 통해 밝힐 수 있는 사항은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제징용 배상 소송을 지원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전쟁 말기에 동원된 명단이 대거 누락됐는데, 일본처럼 기록관리를 철저히 하는 나라가 당시 자국민 취급을 했던 식민지 조선 출신 군인·군무원 명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며 “군인·군무원 관련 부분은 국가(일본)가 주도한 만큼 일본 정부가 획득가능한 모든 정보를 크로스체크해가며 자료를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한일 화해를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