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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상) ‘조선족’보다 먼 이름, 탈북자

[탈북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상) ‘조선족’보다 먼 이름, 탈북자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6-01-31 21:54
업데이트 2016-02-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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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70% 여성… “동남아 출신보다 외계인 취급, 결혼 포기”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수가 3만명에 근접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고향을 등진 그들. 하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는 그토록 꿈꿨던 ‘남측에서의 행복한 삶’이 허상임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된다. 자신들을 이방인으로 보는 지독한 편견과 선입견에 좌절하고 만다. 탈북자들은 말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다고. 그들이 놓여 있는 차가운 현실을 짚어 보고 개선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본다.

“사람들이 내 남편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탈북한 여자와 결혼을 했겠느냐는 거죠. 제가 차라리 베트남이나 필리핀 출신이었으면 남편이 이런 소리를 덜 들었을까요.”

2004년 탈북해 2009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유선아(32·여·가명)씨는 “여섯 살 된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여전히 꺼려진다”며 “이사를 하면 탈북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는데도 옆집 사람들이 어떻게든 알아내 입방아를 찧어 댄다”고 말했다.

31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입국한 전체 탈북자 2만 8795명 중 2만 292명이 여성이다. 10명 중 7명꼴이다. 1998년까지 12%에 불과했던 연간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02년 55%로 절반을 넘어섰고 지난해 처음으로 80%가 됐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90년대 이후 식량 배급이 무의미해지면서 배고픔에 지친 여성들의 탈북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특히 국경지대의 경우 남성은 체제 순응적인 데 반해 여성들은 가정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중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다가 시장경제에 눈을 떠 탈출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성 비중이 높다 보니 선입견이나 차별 등 탈북자들이 겪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이 여성 문제에 집중돼 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연애와 결혼이다. 남성들의 외면이 주된 이유다. 탈북여성이 남한 출신 남성과 결혼할 확률은 동남아 출신 여성보다 낮다는 얘기까지 돈다. 상당수 탈북여성이 ‘혼포자’(혼인포기자)가 되는 이유다. 탈북자 출신인 남영화 미래한반도여성협회 회장은 “탈북여성 중 일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유흥업소나 성매매 업소로 빠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2009년 탈북한 이연희(34·여·가명)씨는 북한 억양 때문에 지난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남자친구가 ‘내 친구들과 만날 때 말하지 말고 앉아만 있으라’고 했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제가 북한 출신인 게 알려지면 망신당한다는 거예요. 같은 한국말을 쓰고 외모도 같은데 외계인 취급을 하는 거죠.”

탈북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음성적인 경로로 진행되는 국제결혼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 중개업체 관계자는 “북한 출신 여성을 만나는 비용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여성과 비슷한 1200만~1500만원 정도지만 북한 여성을 찾는 남성은 거의 없다”며 “탈북여성과 결혼하면 우리나라 정보 당국의 감시를 받거나 북한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남성들도 있다”고 말했다.

업신여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잖다. “때려도 말할 곳이 없을 거야. 신고하는 방법이나 알겠어”라고 생각하는 한국 남성이 꽤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0년 탈북한 김애선(36·여·가명)씨는 “한국에서 처음 만난 남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며 “하나원 교육을 받은 직후 사귀었는데 3개월 만에 손찌검을 하거나 강제로 스킨십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잦은 구타가 이뤄졌다. “경찰에 신고해 봤자 탈북자 말을 누가 믿겠느냐는 그 사람의 말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고 다른 탈북자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헤어졌어요.”

남북하나재단의 201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직은 탈북여성이 탈북남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45.2%로 가장 많다. 하지만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탈북자의 성비 불균형 때문에 이마저도 어려워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탈북여성도 늘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지 1년이 채 안 된 김예정(27·여·가명)씨는 “다른 언니들처럼 한국 남자에게 무시당하고 사느니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돈이나 벌려고 한다”며 “최근에는 탈북여성을 무시하는 한국 내 사정이 많이 알려져 들어올 때부터 결혼은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남 회장은 “기존의 일반적인 여성상담센터들은 탈북자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 등이 부족해 고통받는 탈북여성들을 위한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며 “탈북여성이 2만명을 넘어선 현실을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전문 상담센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6-02-0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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