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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풀기 전쟁에 돌입한 중국·일본…‘샌드위치’ 한국의 선택은

돈풀기 전쟁에 돌입한 중국·일본…‘샌드위치’ 한국의 선택은

입력 2016-01-31 10:36
업데이트 2016-01-3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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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소비절벽’ 극복 대책 만지작…수출기업 체질개선 방안 모색

복합 리스크를 안고 출발한 2016년 초부터 우리나라를 사이에 둔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제권이 돈 풀기를 강화하면서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 경기둔화를 일컫는 ‘G2 리스크’와 저유가 여파로 인한 신흥국 위기설이 맞물린 상황에서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이 사상 처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함으로써 통화·환율 전쟁의 포성을 울렸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29일 2010년 10월 이후 5년여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조정하면서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0.1%에서 -0.1%로 내렸다.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돈에 이제까지는 연 0.1%의 이자를 줬으나 앞으로는 거꾸로 0.1%의 수수료를 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 시중은행들은 가계와 기업 쪽으로 대출을 늘리는 등 유동성을 더 공급할 환경이 조성되고, 시중 금리가 떨어지면서 엔화 가치도 함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중국이 경기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시작한 가운데 일본은 아예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기준금리 시대를 열어젖힘에 따라 동북아 경제권에서 두 나라와 때론 경쟁해야 하는 한국은 환율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마구잡이식 돈 풀기는 일반적으로 해당국의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내면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대외적으론 다른 나라에 비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나 혼자 살려고 이웃나라를 어렵게 만든다’는 의미의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수출이 부진하고 내수 회복마저 주춤해진 한국으로선 주변국들의 강도높은 통화완화 정책이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외환보유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가 가계와 기업을 함께 짓누르고 있는 부채 문제가 심각해 금리를 내리는 것과 같은 통화완화 정책으로 맞대응 카드를 내놓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돈 풀기를 앞세운 주변국들의 경기 부양책에 대응해 우선적으로 ‘소비절벽’ 우려를 불식시킬 대책을 추진하면서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는 구조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재정 조기집행 등 내수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기존 대책을 착실하게 집행하면서 소비를 진작시킬 추가 보완책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경제권에서 본격화되는 환율 전쟁에서 우리 수출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체질개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줄 강력한 정책방안을 찾고 있다.

◇ 주요국들 부양 카드 ‘봇물’…일본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

세계 주요국들은 연초부터 국제유가 하락, 중국의 불안 등으로 경제가 흔들리지자 부양카드를 제시하고 있다.

불안의 진원인 중국은 지난 20일 발표한 6천억 위안(110조원)의 중기 유동성 공급을 포함해 270조원 상당의 자금 공급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최근에는 어려운 재정여건에도 감세 계획까지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추가 양적완화를 고려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21일 “경기 하방 압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면서 “3월 회의에서 현재의 통화 기조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드라기 총재의 이 발언을 ECB의 3월 추가 양적완화 단행으로 해석했다.

작년 말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미국도 통화정책의 정상화에 주춤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연준은 앞으로 금리 정책 방향에 대해 명확한 암시를 주지 않았지만 작년 말 금리를 올릴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연준은 “고용, 소비, 투자가 호전되고 있지만 성장이 지난해 후반부터 둔화됐다”면서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은 올해 4차례 정도로 예상했던 연준의 금리 인상이 1∼2차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고 3월에는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행(BOJ)은 29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라는 카드를 빼들며 추가 경기부양의 신호탄을 쐈다.

◇ 추가 부양카드 필요성 커지는 한국…정치적 요인도 부각

한국에서도 부양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다.

지난해 정부의 각종 소비진작책 이후 우려되는 소비절벽 등으로 내수 회복세가 불확실하다.

소매 판매는 지난해 11월과 12월, 2개월 연속 감소했고 올해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메르스 사태 직후인 지난해 7월 이후 6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수출도 불안한 출발을 했다.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액은 222억8천2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9% 줄었다.

게다가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소식은 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지난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199.1원으로 전일보다 9.4원 떨어졌고 같은 날 오후 3시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994.41원으로 하루 사이에 20.84원이나 급락했다.

그만큼 원화 가치는 오르고 엔화 가치는 떨어진 것이다.

이런 흐름은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주고, 특히 일본 기업과 경합하는 우리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양적완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낀 한국으로선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올 1분기 재정조기 집행으로 버티고 있지만 자칫하면 지난해 4분기(0.6%)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0%대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1% 성장률 복귀로 지난해 3분기에 살린 회복의 불씨가 꺼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1분기 직후인 4월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경기는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기가 확실하게 회복되지 않으면 정치권에서 강력한 부양책을 주문할 수 있다.

더구나 1분기 성장률은 지난달 취임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아들 첫 성적표가 된다.

◇ 정부, 소비 살릴 방안 고심…‘미시적인 대책’ 될 듯

연초 유 부총리 취임 시점까지만 해도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웬만한 경기 부양책을 이미 집행한 상태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에 1.3%로 올랐던 성장률이 작년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0%대에 머물 것으로 우려되자 정부는 다시금 어떤 부양 카드를 내놓을지 고심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지난 28일 첫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경기회복의 흐름을 유지하려면 민간부문의 활력이 제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기회복 모멘텀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단기적인 경기보완 방안도 강구하겠다”며 부양책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부는 재정 부문에서 올 1분기에 경기진작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의 재정을 최대한 집행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기집행률을 작년 1분기(22.7%) 보다 높은 23.7%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소비 부진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곧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최근 “올해 1분기 소비가 썩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이를 보완하는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소비보완 방안에 대해서는 “미시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하반기부터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인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인하 필요성과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한은이 2월16일 열릴 예정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올 1월까지 7개월째 연 1.5%로 동결한 기준금리를 어떻게 가져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 전문가들, 소비절벽 위기 공감대…기준금리 인하엔 신중 모드

경제전문가들은 올 상반기 소비절벽으로 내수가 위축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체로 공감을 나타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국내 경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소비 절벽 가능성”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소비 추세가 꺾이지 않도록 일시적인 소비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거나, 필요하다면 민간 소비를 자극하는 분야에 재정을 조기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경기 둔화가 심각한 수준인데다 국내에서도 물가 하락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어 소비가 회복되기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자금 지원과 같은 대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부양책 가운데 금리인하 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성 교수는 “(한은이) 금리 추가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이 경우 가계부채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반면에 유럽과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쓰기에는 국내 여건상 적절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 위원은 “주요국이 완화 정책을 편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지금 국내 금리 수준도 경기를 떠받치는 데 충분히 완화적이라고 보이며, 금리를 추가로 내린다고 실물경기가 살아날 상황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금리인하 정책을 썼을 경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각 부문의 정책적인 협조가 긴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금리를 낮췄을 때 돈이 잘 돌아가도록 미시적으로 정책 협조가 받쳐줘야 한다”며 “과감한 혁신과 구조개혁이 동반된 상태에서 금리 인하와 같은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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