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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허문 아르코미술관… 예술이냐, 침해냐

담장 허문 아르코미술관… 예술이냐, 침해냐

입력 2013-11-20 00:00
업데이트 2013-11-2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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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 5명의 프로젝트… 故 김수근 설계 36년만에 되살려

지난 9월 말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1979년 건립)의 뒷담이 헐렸다. 높이 2.7m, 길이 8m의 이 담벼락의 해체는 ‘공공미술관인 아르코미술관과 마로니에 공원 사이의 길을 뚫어 열린 공간으로 변모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는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의 꿈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의 뒷담을 허물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 1977년 미술관 설계 당시 김수근(1931~1986)은 누구나 차별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해 담벼락을 넣지 않았다.  ‘오프닝’프로젝트팀 제공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의 뒷담을 허물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 1977년 미술관 설계 당시 김수근(1931~1986)은 누구나 차별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해 담벼락을 넣지 않았다.
‘오프닝’프로젝트팀 제공
젊은 예술가들이 아르코미술관에서 철거한 담벼락으로 만든 설치미술품. ‘오프닝’프로젝트팀 제공
젊은 예술가들이 아르코미술관에서 철거한 담벼락으로 만든 설치미술품.
‘오프닝’프로젝트팀 제공
김중업(1922~1988)과 함께 건축계를 이끌었던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은 누구나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전시공간을 꿈꿨다. 붉은 벽돌 건물로 상징된 미술관은 둘러싸여 있으나 결코 막히지 않은 ‘모태 공간’을 지향했다. 또 대학로의 큰길에서 미술관 뒤편의 낙산까지 연결되는 문화통로로서의 선언적 의미도 컸다.

하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범재 단국대 명예교수(전 공간건축사무소 실장)는 “김수근 선생이 1977년 설계한 원안에는 담벼락이 없었다. 당시 서울시 건축심의위원들이 반대해 어쩔 수 없이 양옆에 문이 달린 낮은 담벼락으로 절충했고, 이를 놓고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미술관 뒤 고급 주택가에 서울대 출신 유력인사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을 얻었다”고 전했다.

서울대 문리대 이전과 대학로의 상업지구화와 맞물려 미술관의 벽은 이후 더욱 견고해졌다. 양옆의 통로는 아예 폐쇄됐고, 담의 높이도 높아졌다. 인근 공원이 불량 청소년과 노숙자들이 모이는 우범지대가 되면서 미술관은 점차 주변과 멀어졌다. 그렇게 영영 좌절될 듯하던 김수근의 꿈은 최근 5명의 젊은 예술가들의 의기투합으로 무려 36년 만에 실현됐다. ‘오프닝’ 프로젝트로 불린 활동은 지난해 아르코미술관이 공모한 ‘퍼블릭아트오픈콜 오디션’의 당선작이기도 하다. 열린공원으로 바뀐 마로니에공원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미술관 측이 제안한 설치미술전에서 이들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구보배(조경), 김소철, 정재연(미술), 김지연(기획), 이철호(건축) 등 20, 30대 작가들이 참여했다.

미술가 정재연씨는 “한 건축학자의 논문에서 김수근의 설계 원안을 찾을 수 있었다”면서 “미술관 설계를 돕던 이범재 교수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프로젝트팀은 지난 9월 28일 담벼락을 해체했다. 붉은 담벼락을 제거하고 관람객에게 이동의 자유를 선사했다. 이 프로젝트의 과정은 영상과 사진에도 담겼다. 팀원들은 “김수근 선생의 설계 원안을 되살린 것 외에도 대학로에서 가장 어둡고 침침한 아르코미술관 뒷길을 밝히고, 공공미술의 흐름을 마로니에 공원까지 확장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담벼락은 조만간 난간 형태의 장애물로 재설치될 운명에 처했다. 담벼락이 없어져 사생활을 침해받는다는 일부 주민의 항의와 미술관 측의 모호한 태도로 프로젝트가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팀은 오는 23일 지난 두 달간 모은 온·오프라인 설문과 CCTV 분석을 통해 담벼락 해체 전후의 상황을 비교한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들은 공개 매각을 앞둔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옥(1971)을 비롯해 점차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서울 종로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옛 세운상가 건물(1967), 중학동에 자리했던 직각 삼각형 모양의 옛 한국일보 사옥(1968), 장충동의 옛 타워호텔(1969) 등은 이미 사라졌다. 명동1가의 오양빌딩(1962), 장충동 자유센터(1963), 국립부여박물관(1965), 한계령휴게소(1979), 경동교회(1980), 올림픽주경기장(1986) 등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11-2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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