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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톡톡 다시읽기] 계몽을 둘러싼 사상적 대립

[고전톡톡 다시읽기] 계몽을 둘러싼 사상적 대립

입력 2011-02-14 00:00
업데이트 201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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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조선은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열기에 휩싸인다. 19세기 말 러시아에서 시작된 계몽운동을 본뜬 이 운동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6000여명의 학생을 농촌으로 향하게 했고, 10만여 명의 농민이 교육을 받는 성과를 낸다. 이를 전후해 문학계에서는 농촌계몽 소설이 잇달아 발표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기영의 ‘고향’과 이광수의 ‘흙’이다.

지식인의 농촌 귀향과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여러 모로 닮아 있다. 하지만 이 둘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왜냐하면 두 소설 사이에는 계몽을 둘러싼 첨예한 사상적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작가가 벌인 논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광수는 당시 문단의 주축이었던 ‘공산주의’ 세력을 겨냥하여 주인공 ‘공산’의 무기력함과 혁명의 허망함을 묘사한 소설 ‘혁명가의 아내’를 발표한다.

이를 “문학예술의 사상성과 계급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이기영은 ‘민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변절자의 아내’를 발표하여, 이광수의 소설을 저열한 연애지상주의와 제국주의로 변질된 실력양성론이라 매도한다. 이러한 사상적 대립을 반영하듯 두 소설의 차이는 도입부부터 명백히 드러난다. ‘고향’이 ‘농촌 점경’이라는 소제목으로 농촌의 삶을 묘사하는 반면, ‘흙’은 주인공 ‘허숭’이 여인네를 두고 망상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소설 말미까지 이어져 농민들의 잠재력 및 지식인과 농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고향’과 달리 ‘흙’은 농촌의 현실보다는 주인공 허숭과 그의 아내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결국 농민과 어우러짐으로써 계몽의 구도에서 벗어나 변신을 거듭하는 ‘고향’의 희준과 달리 ‘흙’의 허숭은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계몽주의자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에는 농민들의 무지에 지쳐 또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만다.
2011-02-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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