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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 부패는 무엇으로 이어질까/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글로벌 시대] 부패는 무엇으로 이어질까/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입력 2010-01-18 00:00
업데이트 2010-01-1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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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부패보다 흥미로운 주제도 드물 것이다. 뇌물 수수에 얽힌 거물급 정치인의 스캔들이 신문 머리를 장식하고, TV 주요뉴스로 등장하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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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아르촘 산지예프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서울특파원
부패는 정도만 다를 뿐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러시아의 경우 안타깝게도 부패는 극히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상 모든 러시아인이 부패를 경험하고 있다. 민원서류를 뗄 때도, 아이를 유치원에 넣을 때도,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도 부패를 경험한다. 그런 구체적인 사례들은 끝없이 나열할 수 있을 정도다. 소위 ‘일상의 부패’가 만연돼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을 뒤덮고 있고, 그것이 사회의 타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취임 후 부패와의 투쟁을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언하기도 했다. 얼마 전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러시아의 부패가 추악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리스 그리즐로프 국가두마(의회) 의장도 러시아의 뇌물 문제를 언급하면서 ‘부패정서(Corruption Mentalit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부패는 소비에트 시대에도 있었다. 물론 당시의 부패는 규모 면에서 오늘날과는 다른 것이었다. 소비에트 시대가 막을 내리자 자유의 물결이 러시아를 뒤덮었고,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뇌물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항상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동시에 포함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며,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자금 흐름을 통제하면서 뇌물을 받거나 자기 사업을 벌일 가능성을 얻게 된 관료들을 비롯한 사회 각계의 대규모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와 한국은 어느 정도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독재 시절 한국은 부패가 있었다 해도 극히 제한적인 규모로 이루어졌으나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뇌물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러나 한국의 부패 문제는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만큼 심각한 것도 아니다. 한국의 부패는 주로 사회 상류계층과 연관된다. 많은 결정권을 가진 국가 관리가 뇌물을 받는 것은 생활상 부패와는 다른 문제다. 러시아도, 한국도 관료 조직의 규모가 방대하다. 수천명의 관리가 매일 그 누구에겐가 유리한 결정을 내리며, 그 누군가의 몫이 더 커지게 하려는 유혹이 상존한다.

그러나 범죄 자체보다 범죄가 초래하는 결과가 더 끔찍할 수 있다. 얼마 전 러시아 페름 지방에서 발생한 참사는 범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화재로 150명이 목숨을 잃었다. 검찰이 아직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화재안전법규가 무시됐기 때문이라고 의심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정부, 검찰, 다양한 위원회, 의회 의원들…. 모두가 법률 제정, 기소, 벌금 부과 등을 통해 나름대로 부패와의 전쟁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의 결과가 항상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부패 문제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 자체다. 관리에게 뇌물을 주려는 사람이 없다면, 부패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문제는 교육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완전한 사회도 있을 수 없다는 고전 명언이 있듯이,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패’라는 질병에 대한 만병통치약을 찾아나갈 것이지만,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부패가 무엇인지, 어떻게 부패와 투쟁할 것인지에 관한 논란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욕망에 휩쓸리기 전에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까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2010-01-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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