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6) 베트남 라오스 돈뎃섬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6) 베트남 라오스 돈뎃섬

입력 2004-03-05 00:00
수정 2004-03-0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메콩강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섬마을 아이들.
메콩강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섬마을 아이들.
사실 베트남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을 때만해도 걱정이 태산이었다.‘말라리아 약을 안 먹어서 모기에 물리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그곳엔 사람보다 닭이 더 많다던데 여행자 조류독감 환자 1호가 될 수도 있겠다.’‘얼마전에 푸쿤이라는 곳에서 게릴라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던데.’….라오스에 대해 편협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마치 사지로 쫓겨 들어가는 사람들처럼 긴장에 또 긴장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그 모든 걱정들이 기우였구나 싶다.사람들은 이전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고,또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순수한 사람들의 미소를 따라 여행을 하고 있다.아쉬운 건 라오스의 별미인 닭칼국수와 닭죽을 못 먹어본다는 것 정도이다.

메콩강의 고기잡이배.
메콩강의 고기잡이배.
라오스는 영국과 거의 같은 크기의 땅덩이에 인구가 540만명밖에 안 된다.인구밀도가 우리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라오스에서 가장 큰 도시 비엔티엔도 수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고,차도 드물다.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아직 그다지 각박해지지 않은 것 같다.옛날 우리의 시골처럼 인심도 후하고 인상들도 선하다.

우리가 라오스에 들어올 때 예상했던 여행지는 북쪽의 방비엥이나 루앙프라방 같이 한국의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들이었지만,막상 라오스를 여행해 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남부 라오스를 가보기를 적극 추천한다.할 수 없다.계획수정,비엔티엔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남부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돈뎃섬 부근 메콩강가에 자리잡은 마을전경.
돈뎃섬 부근 메콩강가에 자리잡은 마을전경.
우리가 간 곳은 앙코르와트의 초기유적지가 있는 참파삭과,남쪽으로 더 내려가 4000여개의 섬이 있는 돈콩,돈뎃이라는 섬이다.참파삭에서는 유적지라도 볼 수 있었지만 돈콩,돈뎃 섬은 정말 할거리,볼거리가 없는 곳이다.특히 돈뎃 섬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만 지면 칠흑 같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구경할 게 없어도 지루하지 않고 할 일이 없어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장소가 또 이곳이다.아침에 해뜨면 자전거를 빌려 강변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돌아 방갈로로 돌아온다.메콩강물로 등목하고 육지에서 공수한 귀한 맥주 한 잔을 들고 강변으로 난 방갈로 발코니의 그물침대에 누워 강물을 보거나,음악을 듣는다.

돈뎃섬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
돈뎃섬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
하릴없이 오후를 보낸 뒤 해질 녘에 다시 산책하면서 주민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사진도 찍어준다.서울에서는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초조·불안하고,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안달에 사로잡혀 살았는데,이곳에서는 그런 모든 세상사가 참 덧없이 느껴진다.‘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이렇게 유유자적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이곳을 벗어나면 우리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시간의 힘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겠지만,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돈뎃에서 만난 할아버지

전기가 안 들어오는 이곳은 해가 지면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초저녁에는 그나마 울타리 입구에 발전기를 이용한 메추리알만한 전구를 하나 켜놓는데 옆집 할아버지는 날마다 삼십분 정도 전구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수천,수만마리의 날벌레들을 짚단에 불을 붙여 휘휘 저으며 잡는다.해도 해도 계속해서 날아드는 그 날벌레들을 하염없이 잡고 있는 할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날마다 손짓,발짓,영어,한국어,라오스어를 섞어가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할아버지는 별로 찾지 않던 섬에 낯선 이방인 여행객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 같다.별로 할 말이 없어도 자주 들러 이것저것 알려주고 돌아가시곤 했다.돈뎃에서의 3박 4일동안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난 배타고 키낙(돈뎃에서 가까운 육지로 아침장이 선다.)까지는 나가 본 적이 있지.(태국 그림엽서를 꺼내며)이건 여행객이 주고 간 건데 방콕에는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다는데 한국에도 높은 건물들이 있수?”

우리가 방콕보다 더 많다고 하자,손가락으로 6을 가리키며 “6층짜리 빌딩도 있다구?”하신다.한참 웃다가 “63층짜리 건물도 있어요.”하니까 거의 뒤로 넘어가신다.까올리(라오스어로 한국)에 대해 많이 아느냐고 여쭤 보니 “남한은 미국이랑 친하구,북한은 중국이랑 친하구,맞지? 한국사람들은 싸움 잘해.”하며 양 엄지손가락을 높게 세워든다.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총 쏘는 흉내를 내는 걸 보니 베트남전에 대해 아시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영어는 ‘same same’,‘No Problem’이다.무슨 말이건 대부분 이 두 마디로 해결하는데 재밌는 건 또 그런대로 다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뭘 부탁해도,혹은 뭐가 잘못될까 걱정해도,뭘 잃어버려 미안해해도 무조건 ‘노 프로블럼’이다.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이 주문한 대로 안 나오거나 서로 말이 잘 안 맞으면 나중엔 그냥 웃으며 무조건 ‘세임세임’이다.

프랑스랑 영국은 같은 서양사람이니 ‘세임세임’이고,방콕이랑 서울은 둘 다 높은 건물이 있으니 ‘세임세임’이다.생선 요리를 시켰는데 물고기가 없으면 돼지고기를 가리키며 ‘세임세임’이니까 그냥 그걸 먹으라고 한다.우리도 재미있어서 한동안 그 두마디로만 대화를 나누었다.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보다 더 긍정적이고 위트있는 말이 있을까 싶다.˝
2004-03-05 4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