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 국민 식민지배 무감각… 이게 가장 무서운 본질”

[단독] “日 국민 식민지배 무감각… 이게 가장 무서운 본질”

김승훈 기자
입력 2015-04-07 23:48
수정 2015-04-08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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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일부 군인이나 정치가가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가 행한 겁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 지배-피지배 구조가 정착돼 일반인들마저 식민지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감각이 마비돼 가는 것, 이것이 식민지 지배의 가장 무서운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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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는 “연극은 인간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그리는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일본의 악랄한 수탈 행위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인이 어떻게 잔혹한 행위자로 변해 가는지 일상을 통해 짚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현암사 제공
일본 대표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는 “연극은 인간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그리는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일본의 악랄한 수탈 행위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인이 어떻게 잔혹한 행위자로 변해 가는지 일상을 통해 짚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현암사 제공
일본 연극계의 대표주자 히라타 오리자(53)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희곡집 ‘서울시민’(현암사)의 국내 출간을 맞아 7일 이메일 인터뷰한 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본질을 한·일 두 나라가 제대로 연구하고 재조사할 시기에 와 있다”며 “일본 정치인들은 말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히라타는 2000년대 국내 일본 연극 붐을 일으킨 일본 대표 극작가이자 연출가다. 연극 ‘서울시민’은 일제강점기인 1909~1939년 식민지 수도 서울(한성 또는 경성)에 살았던 한 일본인 가족의 일상을 조명한 시리즈다. 강제병탄 직전의 세태를 그린 ‘서울시민’(1989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그린 ‘서울시민 1919’(2000년), 1929년 대공황 여파를 다룬 ‘서울시민·쇼와 망향 편’(2006년), 일본의 침략전쟁 광기를 묘사한 ‘서울시민 1939·연애의 2중주’(2011년) 등 20여년에 걸쳐 쓴 연작 희곡 4편이 실려 있다. 연극 ‘서울시민’은 일본,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일부 일본인 중에는 아직도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좋은 일도 했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런 말이 어떤 감각에서 나오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파헤치고 싶었어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게 어떤 일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왜곡이 생겨나는지도 쓰고 싶었습니다.”

식민지 지배라는 자극적인 주제를 다뤘지만 내용은 무미건조하다. 충격도 반전도 없다. 특정 공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일상이 펼쳐질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평범한 일상 묘사에서 작가의 저력이 뿜어져 나온다. 일상의 이면에 감춰진 일본인의 본성을 날카롭게 꼬집어내기 때문이다.

“스페인 등의 ‘수탈형’ 식민지 지배와 달리 일본이 했던 것은 ‘동화형’ 식민지 지배입니다. ‘일본은 좋은 일을 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유럽 방식과는 달랐다’는 일본 우파의 논리와 닿아 있습니다.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죠. 동화형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비극을 성실하게 써 가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1985년 대학 시절 1년간 연세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게 식민지 지배를 다룬 작품을 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깊이 공부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실상도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일제강점기를 다룬 자료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교환학생 때 읽은, 손기정 선수에 대해 쓴 ‘일장기와 마라톤’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일본 작가들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2차 대전을 그린 작품은 많지만 식민지 문제를 다룬 작품은 별로 없습니다.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요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소재로 한 한·일 합작 공연 ‘신모험왕’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2002년 6월 터키 이스탄불의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머무르게 된 다양한 세대의 한·일 여행자들을 통해 한국인, 일본인의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오는 6월 일본 도쿄 공연 이후 7월 한국 관객을 만난다. “위안부와 관련해서도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언젠가는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조금 추상적인 방식으로 ‘강제라는 건 어떤 것인가’ 하는 주제로 작품화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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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4-0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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