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 덜렁이 할머니와 깔끔이 엄마/박재형

[엄마와 읽는 동화] 덜렁이 할머니와 깔끔이 엄마/박재형

입력 2009-10-05 12:00
수정 2009-10-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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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아, 여기 둔 종이 안 봤니? 친목회 돈 받고 적은 걸 놔뒀는데.”

엄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며 물었다.

“아니요. 전 책을 읽고 있었던 걸요.”

“그래? 그럼 누가 손을 댔지?”

엄마는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 두었는데…….”

엄마는 몇 번이나 응접테이블 위와 아래를 기웃거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 위에는 먼지 하나 앉아 있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조금 전에 요 위에다 종이를 놔뒀거든. 그런데 없잖아.”

“난 백 번 말해도 안 봤어요.”

“귀신이 곡을 하겠네. 그럼 어디로 갔지?”

엄마는 다시 테이블 주위를 살피셨다.

“혹시, 네가 보고 시치미 떼는 거 아니냐? 봤으면 얼른 내 놔라.”

엄마는 미심쩍은 얼굴로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만, 난 절대로 보지 않았어요.”

나는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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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엄마의 잔소리에 얼마나 시달렸는데 애꿎은 나에게 덤터기를 씌우려 하다니. 나는 엄마의 물건에는 정말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 잘못했다가는 엄마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혹시 그럼, 엄마가?”

엄마는 의심의 화살을 외할머니에게 겨누었다.

“엄마! 왜 또 외할머니를 의심하세요?”

나는 혹시나 하면서도 외할머니 편을 들어드린다는 생각에 큰 소리쳤다. 외할머니는 성격이 찬찬하지 못해서 가끔씩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의심이 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의심하는 건 싫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지.”

엄마는 사라진 종이를 찾지 못해 다시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참 깔끔하다. 뭐든지 어질러진 꼴을 못 보신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물건은 찾기 쉬운데 두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외할머니 방에 들어가면 온갖 물건이 방안 가득 널려 있다. 아니 이부자리만 빼고 약이랑 할머니 소지품,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난 건망증이 심해서 안 보이는데 두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와 외할머니는 자주 다투시지만 외할머니는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엄마는 청소귀신, 정리귀신이 씌운 모양이다. 가구들은 늘 반질거렸고, 물건이 하나라도 제자리에 없으면 난리를 피운다.

“너무 깨끗하면 복이 달아난다. 대충대충 청소해라.”

외할머니가 이따금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다니러 왔다가 엄마의 깔끔을 떠는 모습에 혀를 차더니 좀처럼 놀러오지도 않는다. 먼지가 보이지 않는데도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냉큼 걸레질을 하니 할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으신지 안절부절못하다가 시골로 내려가신 적이 있다.

“원 불편해서 다시 가겠냐?”

아빠가 할머니에게 놀러오라고 전화를 하면 할머니는 못마땅한 듯이 말씀하신다.

“당신 왜 그래? 어머니가 편하게 지내다 가게 하지.”

아빠가 엄마에게 나무라면 엄마는 “내가 뭐 어머님이 싫어서 그런 게 아녜요. 먼지가 앉아서 닦은 것뿐이지.”하고 변명을 하신다.

그런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며 나는 슬그머니 기분이 좋았다.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야 해. 그래야 집안이 늘 깨끗하지, 손님이 와도 안 부끄럽고. 찾기도 쉽고. ”

노래를 부르는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헤매다니 고소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청소나 정리뿐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정확하지 않으면 엄마는 마음을 놓지 않으신다. 시장에 갈 때에도 정확하게 살 물건을 써서 꼭 그것만 사가지고 온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싸게 나와도 엄마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니 먹고 싶은 과일이나 떡볶이, 어묵 같은 걸 맛볼 수가 없다. 옷이나 신발 같은 걸 살 때도 싸고 좋은 것을 산다면서 하루종일 돌아다녀 진을 다 빼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사다주신 걸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받아들인다.

“신발이 잘 정리되어야 도둑이 안 들어. 도둑이 들어왔다가 아 이 집은 신발장을 보니 물건을 함부로 놔두지 않겠다 하고 가버리지.”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으면 엄마의 잔소리 테이프는 자동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었으면 제자리에 꽂아야지.”

만일 책을 읽다가 방바닥이나 거실에 두었다가는 잔소리가 금세 날아와 귀에 꽂힌다. 그래서 나는 책에 손도 대지 않는다. 책정리를 안 했다고 꾸중을 듣느니 차라리 안 읽고 말지. 그러면 또 책을 읽지 않는다고 꾸중을 하신다.

“너 책을 많이 읽어야 똑똑한 사람 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거 알아 몰라? 학생이 책도 안 읽고 무슨 공부를 한다는 거야?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 알지?”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난다.

그래도 살 맛 나는 건 외할머니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일을 대충대충 하시고, 아니 오히려 덤벙대신다. 빨래를 할 때도 대충대충 하시기 때문에 외할머니가 한 빨래를 엄마가 다시 할 때도 있다.

“엄마, 세탁기에 넣어서 빨면 되잖아요. 왜 만날 손으로 빤다면서 잘 문지르지도 않고 비눗물도 잘 헹구지 않는 거예요?”

“왜 비싼 전기를 써서 빨래를 하니? 손으로 대충해도 되지. 멋을 낼 옷도 아닌데 좀 더러우면 어때?”

외할머니는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왜 그리 성화냐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여 엄마를 더욱 화나게 만들 때도 있다.

할머니는 잘 잊으신다. 시장에 갔다가 돈만 주고 물건을 안 가지고 올 때도 있고, 돋보기안경은 벌써 몇 개째인지 모른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건망증 때문이라거나, 노망이 들었다거나, 때로는 치매에 걸린 것 같다고 하시면서 쩔쩔매실 때가 많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잊으신다.

“엄마, 이 종이에 살 물건을 다 썼으니까 꼭 이 종이를 보면서 사야 해요.”

엄마가 바빠서 외할머니에게 시장가는 것을 부탁하면 외할머니는 그중에서 몇 개는 빠뜨리실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내가 다시 시장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공부하기 싫을 때는 시장에 가는 핑계로 놀 수 있으니까 나는 횡재를 한 셈이다.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네.”

할머니가 실수를 하면 엄마는 외할머니가 못마땅해서 중얼거릴 때가 많다.

아무튼 잔소리와 청소와 정리하러 태어난 사람처럼 엄마는 극성이시다.

엄마가 종이를 찾으러 방으로 거실로 들락거릴 때, 외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엄마, 혹시 여기 둔 종이 못 봤어요?”

“종이? 어질러졌기에 쓰레기봉투에 넣어 아까 버렸는데. 난 또 쓰레긴 줄 알았다.”

“정말이에요?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외할머니를 쳐다보더니 급히 밖으로 나가셨다.

“난 또 네가 종이를 아무렇게나 놔둔 줄 알고 엄마가 보기 전에 얼른 치우려고 했지.”

외할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잘했어요, 할머니. 엄마도 당해 봐야 잔소리가 줄어들지요.”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매일매일 깔끔을 떠는 엄마가 종이를 찾지 못해 난리치는 걸 보는 건 흐뭇하기까지 했으니까.

한참 후, 엄마는 종이를 들고 현관문을 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다시는 아무거나 버리지 마세요. 한참 찾았잖아요. 쓰레기차가 다녀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알았어. 다신 손대지 않으마.”

“내 물건에 손대지 말고 엄마 방이나 깨끗하게 치우세요. 누가 오면 엄마 방문을 열어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니까요.”

엄마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이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난 네가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미안한지 변명처럼 이야기했다.

“내가 언제요? 난 엄마 물건에 함부로 손댄 적이 없는데요.”

엄마도 변명처럼 대답했다.

“내가 말해주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리를 한다면서 내가 쓰던 물건에 손대서 내가 찾느라 애먹고 있는 걸 넌 모르지? 너도 나이가 들면 다 나처럼 잊기 대장이 돼. 너라고 안 늙을 줄 아냐? 엉엉엉”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엄마에게 당한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엄마도 참.”

엄마는 더 말을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외할머니가 우는 걸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이나 서 있다가 외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알았다. 내가 철딱서니 없이 울었구나. 철이 없게.”

외할머니가 눈물을 그쳤다.

나는 눈물을 흘리던 외할머니가 하나도 철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외할머니는 또 실수를 하실 것이다. 그땐 내가 응원을 해 주어야지.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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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박재형씨
동화작가 박재형씨
몇 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철이 들어 많이 후회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대화를 많이 하고 배려를 해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약력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남. 아동문예 신인상, 계몽아동문학상, 제주문학상 받음. ‘검둥이를 찾아서’ ‘내 친구 삼례’ ‘이여로 간 해녀’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 ‘까마귀오서방’ 등의 창작집이 있음. 현재 서귀포학생문화원장(http://iyudo.hihome.com)

2009-10-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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