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목포대교수 ‘한국전쟁 원인’ 재해석
한국전쟁 56주년을 앞두고 묵직한 연구서 한권이 나왔다.800여쪽 짜리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돌베게 펴냄)이다. 정병준 목포대 교수가 지었다.10여년간의 연구와 미국국립문서관리청에서 얻은 문건들을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해석의 틈바구니에서 사실과 자료만을 추렸다는 정 교수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돌베개 제공
6월27일 38선 전황도
맥아더 사령부 정보요약에 첨부된 6월27일 오전5시 38선 전황도. 옹진쪽에서 남한군 일부는 해상으로 탈출하고(evacuated) 일부는 해주로 진격한 것으로 표시됐다. 이 자료를 근거로 수정주의의 대부 브루스 커밍스는 ‘해주침공설’을 제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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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지원을 받아 ‘침략야욕에 불타던’ 북한은 능력이 없었을까.“단적으로 북한군 총참모장이 게릴라전 경험이 전부인 33살 강건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군 지휘부가 현대적 무기와 대규모 인원이 투입된 전면전을 무슨 수로 지휘하겠습니까.” ‘땅크를 앞세운 전격전’이었음에도 스탈린이 분통을 터뜨릴 정도로 북한군의 남하속도가 느려터지고, 낙동강전선에 다다랐을 때 병력의 80%를 남한에서 채워야 할 정도로 극심한 병력손실에 시달린 이유다.
남한도 능력없이 자신감만 내밀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식과 달리, 실제 자료를 검토해보면 49년 중반까지 남한의 군사력이 더 우세했다.48년 여순사건에 충격받은 남한은 군사력을 크게 강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38선 부근에서 북한군과의 계속 무력충돌을 일으키며 ‘북진통일론’을 내세울 만큼 호전적이었다. 미국이 무기보급량을 줄이고, 북한이 49년 후반부터 군사력을 급속히 끌어올릴 정도의 호전성이었다. 정 교수는 또 북한을 자극하고 재빨리 후방으로 철수하는 게 남한과 미국의 전략이었다는 ‘남침유도설’을 완전히 부정한다. 여기에는 남한이 방어시설을 안 갖춘 것은 후방으로 쉽게 도망가기 위해서였고,25일 새벽 남한이 해주를 침공한데 북한군이 대응한 게 한국전쟁이라는 ‘해주침공설’ 두 대목이 있다.
정병준 목포대 교수
해주침공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결정적으로 해주침공은 ‘방어계획’이다. 북한군이 침공하면 옹진에 있던 17연대로 북한의 옆구리를 치겠다는 작전. 당연히 미국도 알고 있었다.“전쟁이 터진 뒤 17연대의 일부가 28일까지 연락두절상태가 됩니다. 전격전에 충격받은 남한의 군수뇌부는 이를 계획대로 17연대가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패전소식을 감추기 위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합니다. 도쿄 맥아더 사령부도 그렇게 생각한거죠.” 맥아더 사령부가 남긴 38선 전황도의 해주공격 사실이 3일만에 증발하는 까닭이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정 교수가 내린 결론은, 한국전쟁은 아무런 능력없이 통일만 떠벌렸던 남북한 모두가 패배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 사태를 컨트롤했던 소련과 미국 역시 패배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6-06-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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