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녀기자의 인터미션] 진정한 문화교류의 조건

[이순녀기자의 인터미션] 진정한 문화교류의 조건

입력 2006-06-13 00:00
수정 200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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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극단 국내진출 논란을 보며

일본 초대형 극단 시키(四季)의 한국 진출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7일 시키와 롯데그룹이 10월말 개관하는 국내 첫 뮤지컬 전용극장 ‘샤롯데극장’에서 제작비 215억원의 뮤지컬 ‘라이온 킹’을 기존 뮤지컬보다 30% 싼 가격에 무기한 공연한다고 발표한 직후 한국뮤지컬협회가 내놓은 성명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강경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시키의 국내 진출은 반대하지 않지만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이 일본 공연물의 전용극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협회는 8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우리 공연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본 공연기업의 진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뿐만 아니라 “‘라이온 킹’을 비롯해 시키의 한국 공연 작품에 참가하는 배우와 스태프는 협회 소속 극단이 제작하는 작품에서 가차 없이 배제할 것”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놓았다. 협회는 이 문제와 관련해 오는 19일 프로듀서, 배우, 스태프 등 소속 회원들이 참여하는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토론 결과에 따라 1인 시위 등 물리적인 행동도 불사할 태세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반대하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로 비치기 십상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협회의 성명서가 나간 후 인터넷에는 협회를 비난하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좋은 작품을 싼 값에 볼 수 있다는데 왜 막느냐”는 볼멘 소리가 대부분이다.

반면 협회는 협회대로 강경 대응을 결정한 근거의 정당성을 역설한다. 척박한 땅을 일궈 국내 뮤지컬시장을 옥토로 만들어 놓았더니 외국 기업이 냉큼 들어와 첫 뮤지컬 전용극장을 꿰찬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 게다가 저가 정책으로 기존에 형성된 가격 시장을 인위적으로 뒤흔드는 건 문화교류의 틀을 넘어 문화잠식을 목적으로 한 ‘불공정 경쟁’이라고 비난한다.

문화상품은 공산품과 달라서 자본의 논리나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잣대로만 잴 수 없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 사이에 충분한 교감이 있어야 시키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가 주장하듯 자연스러운 ‘문화교류’가 이뤄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시키와 롯데그룹이 사전에 그에 걸맞는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coral@seoul.co.kr
2006-06-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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