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아직도 구름 위를 노니는 표정이다.27일 개봉한 영화 ‘사생결단’(제작 MK픽쳐스)에서 마약중독자 ‘지영’으로 나오는 배우 추자현(26). 사실 ‘사생결단’같은 남성미 넘치는 영화에서 여배우란, 대개 액세서리에 그친다. 짐승처럼 날뛰는 이 남자에게도 순정은 있다, 그런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런데 추자현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킨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 황정민·류승범, 투톱 사이를 비집고 나온 것이어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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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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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현
정작 본인은 얼떨떨한가 보다.“칭찬은 많이 해주시는데, 아직은 멍해요.” 대신 황정민·류승범 칭찬에 침 마를 새 없다. 두 배우가 펼치는 환상의 앙상블에 연방 감탄사다.“와∼ 그걸,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저는 편집된 순서대로 촬영했거든요. 그런데 두 분은 장소 중심으로 찍다 보니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감정선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완벽해요.” 인터뷰 장소 벽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를 쓰다듬으며 너무 뿌듯하단다. 아무리 배우에게 출연작은 제 새끼같다지만 이 정도면 중증(?)이다. 더구나 포스터에는 두 주연의 얼굴만 있다. 조그맣게라도 자기 얼굴 안 나온 게 섭섭할 법도 한데, 포스터를 바라보는 추자현의 표정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솔직히 그분들 일하시는데 바짓가랑이 붙잡는 게 아니었으면, 적어도 나 때문이라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했던 게 제 마음이었어요.”
추자현은 브라운관에서 꽤 주목받았던 배우. 그러나 데뷔작 ‘카이스트’의 중성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런 역할만 계속 들어왔다.“처음엔 그것도 하나의 도전이었으니까, 나쁘진 않았어요. 그런데 다른 역할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 그게 답답했죠.” 그래서 ‘오 필승 봉순영’(2004년)을 끝으로 드라마 출연을 끊었다. 배우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보다 잊혀짐. 걱정은 없었을까.“왜 없었겠어요. 이 결정을 두번 다시 후회하지 않으리라 몇번이나 다짐했는데요.”
그렇게 푹 쉬다가 만난 영화가 ‘사생결단’이다. 오디션은 봤지만 캐스팅되리라고는 기대도 안했다.“이번은 안돼도 좋으니 다음 작품하실 때라도 불러주세요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하이힐을 벗어던지며 모든 것을 보여줬다.“잘했다기보다 열심히 한다는데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이런 바탕 위에 우러나온 게 바로 ‘추자현표 마약연기’다. 금단증상 때문에 발악하는 장면을 찍기 2∼3일전, 실제 중독자인 2살 연상의 ‘언니’를 만났다. 그때 깨달은 것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면, 중독자와 비중독자가 있다는 사실. 비중독자는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중독자는 사람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이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며칠 동안 호텔방에 꼼짝않고 처박혀 있다 촬영에 들어갔다.
은근히 걱정된다. 근래에 보기 드문 호연을 펼쳐보였다지만, 거친 누아르에서의 마약중독자 역할이었으니 이미지가 너무 ‘쎈’ 쪽으로 쏠리지 않을까. 드라마의 ‘선머스마’ 이미지처럼. 정작 본인은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 영화작업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이번엔 지영이었으니 다음엔 또 어떤 친구가 나를 기다릴까, 또 어떤 감독님과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까 더 기대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