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아빠의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최지운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아빠의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최지운

입력 2006-01-04 00:00
수정 200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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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아빠와 제가 함께 시험을 보아요. 옆집에 사는 언니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워드프로세서 시험이 있거든요. 그런데 창피하게도 아빠는 저보다 급수가 낮은 3급을 본답니다. 저는 2급을 보는데 말이에요.

“알트(Alt)키와 엔(N)키를 함께 누르면?”

“새 문서가 펼쳐지지.”

“인쇄할 때 누르는 단축키?”

“아빠를 무시하니? 알트키 더하기 P키잖아.”

“이건 모를 걸. 컨트롤(Ctrl)키와 브이(V)키를 동시에 누르면?”

“어, 뭐더라. 오려두기인가?”

“붙이기잖아, 아빠. 어떻게 나보다 더 몰라.”

솔직히 저는 아빠가 틀리길 바랐어요. 그래야 우리 선생님처럼 아빠에게 혼낼 수 있거든요. 아빠는 제가 수학 시험에서 20점을 받아 선생님에게 혼날 때처럼 잔뜩 움츠린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계셨어요. 그걸 보곤 겉으론 화가 난 척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엄마는 제 2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받아도 언제든 웃으시며,

“다음엔 잘 하거라.”

라고 자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도 감히 어머니 흉내를 내어 보았어요.

“내일 시험은 잘 보세요, 아빠.”

아빠는 웃으시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 ‘던킨 도너츠’ 매장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한 개씩 틀릴 때마다 도너츠 한 개씩 사주기로 했거든요. 그 날 전 도너츠 5개를 먹고도 4개나 더 남겼답니다.

아빠는 컴퓨터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세요. 저는 컴퓨터로 밤마다 친구들과 만나 ‘카트라이더’도 하고 컴퓨터로 일기도 쓰고, 컴퓨터로 재미난 만화도 보는데 말이에요. 이메일도 없으세요. 언제는 아빠 회사 부장님께 급하게 보내야 하는 서류라며 저보고 타이핑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마침 ‘카트라이더’가 잘 되고 있어서 루찌를 한참 벌어들이고 있는 참이었는데 말이에요.

“어떻게 나보다 컴퓨터를 더 몰라?”

이렇게 화를 내고 말았어요. 그런데 정작 아빠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계시는데 오히려 엄마가 절 크게 나무라셨답니다.

“좋아, 나도 세미 따라 이번에 시험 보겠어.”

아빠가 워드프로세서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신 건 한 달 전쯤이에요. 제가 컴퓨터반 친구들과 시험을 보겠다고 했더니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어요.

“여보, 부장님께 또 소리 들으셨어요?”

“자꾸 나보고 컴맹이라고 놀리잖아. 반드시 따서 부장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거야.”

그래서 그 날부터 아빠는 저의 학생이 되었어요.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덕분에 도너츠는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아빠는 저보다 한 시간 일찍 시험을 보세요. 그래서 저와 헤어져 먼저 시험장에 들어가셨어요. 아빠는 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앉아 제 앞에서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두 손가락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계시겠지요? 그래도 시간 안에 다 치고 나오셔야 할 텐데. 그런데 시험장을 나오시는 아빠의 표정이 밝아요. 시험을 잘 보신 모양이에요. 안타까워요. 도너츠를 더 이상 얻어먹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아빠가 부장아저씨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쁘답니다.

아빠는 자격증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세요. 그리고 수시로 열어보면서 흐뭇해하신답니다. 이젠 귀찮게 메일 보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아요. 제 컴퓨터에서 문서를 친 다음 아빠의 이메일로 보내신답니다. 며칠 전부터는 저한테 ‘카트라이더’도 배우셔서 PC방에서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해요. 친구들은 그런 저를 부러워한답니다. 친구 아빠들은 게임한다고 화부터 내신대요. 비록 아빠랑 같이 하면 질 때가 더 많지만요. 전 아빠랑 게임할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늦은 밤,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셨어요. 아빠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말이에요. 엄마도 놀라서 물어보셨어요.

“왜 이리 많이 마신 거예요? 무슨 괴로운 일 있으세요?”

“나만 살아남았어, 나만. 다 잘렸어.”

그리곤 엉엉 우셨어요. 한 번도 저한테 우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는 아빠였거든요. 엄마가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인사 때 아빠의 부하직원들이 다 잘리셨대요. 아빠만 유일하게 빠지셨구요.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직원들과 못 마시는 술을 실컷 마셨대요.

한동안 아빠의 표정엔 먹구름이 가득했어요. 저랑 PC방에 같이 가지도 않으셨어요. 예전엔 혼자 ‘카트라이더’를 해도 재밌었는데 아빠랑 같이 한 뒤론 혼자하면 무지 재미가 없어요. 그러다 아빠가 문방구에서 엽서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엽서를 사서 갖다드리자 하루 종일 거실에서 엽서를 쓰시고 계셨어요.

“아빠, 밥 먹어.”

아빠가 식사하시는 틈을 타 전 몰래 식탁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향했어요. 아빠가 엽서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쓰시는지 궁금했거든요. 무척 낡아 보이는 만년필 옆으론 제가 사온 엽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어요. 맨 위에 있는 것을 펴보았어요.

‘진대리, 그동안 수고 많았네. 어딜 가든 대진물산과 동료들을 잊지 말고 하는 일마다 번창하길 빌겠네. 그동안 고마웠고 또한 미안하네.’

다른 엽서들도 내용이 다 비슷했어요. 받는 사람의 이름만 달랐구요. 그래서 고생하시는 아빠를 도와드리려고,

“아빠, 내가 컴퓨터로 대신 쳐줄까?” 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아빠는,

“아니, 나도 이젠 칠 수 있는 걸.”

하고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맞아요, 아빠도 당당히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제가 그만 깜빡했어요. 그래서 대신 아빠가 쓴 엽서를 학교 앞에 있는 우체국에 갖다드리기로 했어요.

“어머나, 글씨가 참 예쁘네. 정말 너희 아빠가 쓰신 거니?”

엄마가 주신 용돈을 저금할 때 자주 찾아가는 우체국 언니가 아빠의 엽서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글씨를 잘 쓰신 건가? 잘 모르겠지만 아빠를 칭찬하는 말이라 기분이 좋아서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아빠가 이러니 너도 글씨가 참 예쁘겠다. 니 얼굴처럼.”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제 노트를 보여주며 물어보았어요.

“엄마, 나도 아빠처럼 글씨 예쁜 거야?”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좀 더 정성껏 써야 되겠구나.”

속상했어요. 우체국 언니가 아빠 글씨 칭찬해 준 것처럼 엄마도 내 글씨를 칭찬해주기를 바랐거든요.

“엄마, 나도 어떻게 하면 아빠처럼 글씨 예쁘게 쓸 수 있어?”

“너도 아빠처럼 연필로 글을 써보렴.”

“그러면 나도 잘 쓸 수 있어?”

“그럼.”

그날 전 아빠한테 일기장을 사달라고 졸랐어요. 그래서 아빠는 마시마로가 귀엽게 웃고 있는 스프링노트를 사 주셨어요. 전 거기에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왜 컴퓨터에다 안 쓰니?”

“나도 아빠처럼 예쁜 글씨를 쓸 거야. 아빠도 옛날처럼 다시 펜으로 써.”

“그럼 부장아저씨한테 혼나.”

“부장아저씨 되게 못 됐다.”

아빠는 말없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밝게 웃으셨답니다.



최지운
2006-01-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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