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 속 한자이야기] (94)墨子悲染(묵자비염)

[儒林 속 한자이야기] (94)墨子悲染(묵자비염)

입력 2005-10-29 00:00
수정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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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林 (453)에는 ‘墨子悲染’(먹 묵/임자 자/슬플 비/물들일 염)이 나온다. 이것은 ‘墨子가 물들이는 것을 슬퍼한다’는 말로,‘사람은 習慣(습관)에 따라 그 性品(성품)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墨’자는 붓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검은 ‘먹’을 나타낸 會意字(회의자)이다.‘子’자의 원형은 젖먹이 아기의 모습을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냈다. 본래의 뜻인 ‘아기’에서 점차 ‘자식’‘알’‘열매’‘임자(남자의 미칭)’‘당신’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悲’자는 音符(음부)인 ‘非’(아닐 비)와 意符(의부)인 ‘心’(마음 심)을 합하여 ‘마음이 잡아 찢기듯 아프다.’는 뜻을 나타냈다.‘染’자는 ‘나무에서 採取(채취)한 樹液(수액)에 여러 차례 담가서 물들이다.’는 뜻을 나타낸 會意字이다.

墨子(묵자) 所染(소염)편에는 暴君(폭군)들의 行態(행태)를 예로 들은 대목이 나온다. 이 가운데 夏(하)나라 桀王(걸왕)은 奢侈淫佚(사치음일)을 일삼다 殷(은)의 湯王(탕왕)에게 誅伐(주벌)을 당하였다. 그는 稀代(희대)의 妖女(요녀) 말희에게 빠져 웅장한 궁전을 짓고 珍貴(진귀)한 보화와 미녀들을 모으고, 궁전 뒤뜰에 酒池(주지)를 만들어 호화선을 띄웠다. 주변에서 음란스러운 광란의 춤을 추던 舞姬(무희)들은 북소리 신호음에 맞춰 일제히 酒池의 美酒(미주)를 마시고 숲의 脯肉(포육)을 貪食(탐식)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殷(은)의 紂王(주왕) 역시 달기라는 毒婦(독부)에 홀려 政事(정사)를 그르쳤다.紂王은 달기의 끝없는 욕망 충족을 위해 苛斂誅求(가렴주구)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력을 기울여 호화 찬란한 궁정을 짓고 120일간이나 지속된 長夜之飮(장야지음)의 狂宴(광연)을 벌이기도 하였다. 보다 못한 충신들이 간언하자 불충으로 看做(간주)하고 烙之刑(포락지형:기름칠한 구리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던 형벌)에 처하며, 산 채로 불에 타죽는 모습을 보고 拍掌大笑(박장대소), 즐거워했다고 한다.

周(주)나라의 王(여왕)도 매우 포악한 군주였다. 그는 暴吏(폭리)들을 임용하여 ‘專利’(전리:산림천택을 강점하고 평민의 이용을 금지함)를 행하였다. 또한 일체의 비방 행위를 금지하는 恐怖政治(공포정치)를 행하여, 백성들이 길에서 만나도 감히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눈으로만 인사를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런 행위의 부당성을 충신들이 경계하였지만 듣지 않다가 결국 민중들의 暴動(폭동)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王의 孫子(손자)인 幽王(유왕) 역시 民聲(민성)에 귀기울지 않고 暴政을 일삼다가 權座(권좌)에서 逐出(축출)된 비운의 제왕이다. 그는 卽位(즉위) 2년만에 關中(관중)지역의 大地震(대지진) 慘事(참사)를 겪지만 袖手傍觀(수수방관)하면서, 오히려 阿諂輩(아첨배) 괵석보를 卿(경)으로 삼아 백성들의 怨聲(원성)을 샀다. 또 妖婦(요부) 포사를 王后(왕후)로 삼고 포사의 아들 백복을 태자로 삼으려다 逢變(봉변)하기도 하였다. 그는 포사의 歡心(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 烽火(봉화)를 올리게 하여 제후들을 모이도록 하곤 하였다. 정작 犬戎(견융)이 침공하여 烽火를 올렸을 때는 제후들이 모이지 않았으며 결국 여산(驪山)기슭에서 살해되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2005-10-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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