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 가거라. 아내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1971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면서 자필로 쓴 유언장의 내용이다.‘유일한 평전’(조성기 지음, 작은 씨앗 펴냄)에서는 존경받는 기업인의 모습을 비롯, 고 유 박사의 철학이 담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부동산투기와 탈세를 일삼으며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에 열을 올리는 일부 재벌들의 행태와 비교하면 그의 삶은 ‘정직’그 자체다.
●아들에게 한 푼도 안남기고 가정부 정원사에겐 유산남겨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그는 일찌감치 실천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유일선과 부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다만 당시 7살 손녀에게 학자금으로 1만달러를, 딸 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줬다. 그는 이외 자신의 주식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그 자신은 19년째 같은 만년필을 사용했을 정도로 검약한 생활을 했지만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에게 원가 500원인 유한양행 주식을 각각 1000주씩 나눠줬다. 또 회사앞 자기 명의의 땅 100평을 가정부에게 40평, 정원사와 운전사에게 각각 30평씩 분양해 주기도 했다.
그를 이어 딸 재라씨는 200억 상당의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기증했고, 여동생 순한씨도 유한양행 주식 1만주를 부산생명의 전화에 기증하며 나누는 삶을 보여줬다.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쉴 수 있었던 큰 그늘
9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시간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식품회사를 운영하던 중 세브란스 의전 에비슨 학장으로부터 자신은 연희전문 교수로, 부인은 세브란스 의전 소아과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제약사업을 택했다. 약이 귀해 질병에 시달리던 당시 조국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웠고, 일본 지배 아래 일본 기업이 의약품 시장을 독차지하는 것도 깨고 싶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서재필박사는 이같은 그의 뜻을 알고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편히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되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각가인 딸을 시켜 버들 목각품을 선물로 줬다. 유한양행의 상표 버드나무는 바로 이렇게 탄생됐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큰돈을 벌던 유한양행에 자유당 이승만 정권은 1959년 3억환이라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불법적으로 모은 정치자금은 불법을 자행하는 데 쓸 뿐”이라며 “내가 기업의 신조로 정직과 성실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들과 공범이 될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
그는 1942년 미국에서 항일무장 독립군인 맹호군을 창설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그는 맹호군 활동을 도왔다. 민족의 장래를 걱정, 좋은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유한공고를 세우는 등 교육가로서도 열의를 다했다. 최근 이 책은 고건 전 총리가 최근 존경하는 인물로 고 유 박사를 꼽으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1만 7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1971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면서 자필로 쓴 유언장의 내용이다.‘유일한 평전’(조성기 지음, 작은 씨앗 펴냄)에서는 존경받는 기업인의 모습을 비롯, 고 유 박사의 철학이 담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부동산투기와 탈세를 일삼으며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에 열을 올리는 일부 재벌들의 행태와 비교하면 그의 삶은 ‘정직’그 자체다.
●아들에게 한 푼도 안남기고 가정부 정원사에겐 유산남겨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그는 일찌감치 실천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유일선과 부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다만 당시 7살 손녀에게 학자금으로 1만달러를, 딸 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줬다. 그는 이외 자신의 주식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그 자신은 19년째 같은 만년필을 사용했을 정도로 검약한 생활을 했지만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에게 원가 500원인 유한양행 주식을 각각 1000주씩 나눠줬다. 또 회사앞 자기 명의의 땅 100평을 가정부에게 40평, 정원사와 운전사에게 각각 30평씩 분양해 주기도 했다.
그를 이어 딸 재라씨는 200억 상당의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기증했고, 여동생 순한씨도 유한양행 주식 1만주를 부산생명의 전화에 기증하며 나누는 삶을 보여줬다.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쉴 수 있었던 큰 그늘
9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시간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식품회사를 운영하던 중 세브란스 의전 에비슨 학장으로부터 자신은 연희전문 교수로, 부인은 세브란스 의전 소아과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제약사업을 택했다. 약이 귀해 질병에 시달리던 당시 조국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웠고, 일본 지배 아래 일본 기업이 의약품 시장을 독차지하는 것도 깨고 싶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서재필박사는 이같은 그의 뜻을 알고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편히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되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각가인 딸을 시켜 버들 목각품을 선물로 줬다. 유한양행의 상표 버드나무는 바로 이렇게 탄생됐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큰돈을 벌던 유한양행에 자유당 이승만 정권은 1959년 3억환이라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불법적으로 모은 정치자금은 불법을 자행하는 데 쓸 뿐”이라며 “내가 기업의 신조로 정직과 성실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들과 공범이 될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
그는 1942년 미국에서 항일무장 독립군인 맹호군을 창설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그는 맹호군 활동을 도왔다. 민족의 장래를 걱정, 좋은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유한공고를 세우는 등 교육가로서도 열의를 다했다. 최근 이 책은 고건 전 총리가 최근 존경하는 인물로 고 유 박사를 꼽으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1만 7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2005-10-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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