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다룬 소설 ‘푸른 혼’ 펴낸 김원일씨

‘인혁당 사건’ 다룬 소설 ‘푸른 혼’ 펴낸 김원일씨

입력 2005-02-04 00:00
수정 2005-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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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서른세살에 시작된 푸른 고집이었다. 진실을 본 듯 했으되 펜을 들진 못했다. 부양가족 일곱명을 거느린 결손가정의 가난한 가장이던 그때는 “겁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쓰리라, 각오를 품었었다.

김원일 씨
김원일 씨 김원일 씨
그 검질긴 고집을 소설로 달래내는 데 30년이 걸렸다. 중진작가 김원일(63)이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푸른 혼’(이룸)을 냈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다잡고도 2년을 꼬박 매달린 결실이다.

책이 묶여나온 요며칠 머릿속이 어찔어찔하다. 출간 마무리에 진이 빠진데다 술, 담배, 당뇨 때문에 설상가상 들솟아버린 부실한 치아 때문일까. 그런데 그 따위 시덥잖은 것들이 마음자리를 이렇게 자반뒤집기 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책 출간·과거사규명은 우연의 일치”

“우연이요. 이런 게 아닐까 싶소. 죽은 영혼들의 간절한 기원, 그들이 내 소설에 보내는 강렬한 암시 같은 것.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고, 내 소설이 시사성을 갖출 이유도 없는 거라. 그냥 지금쯤 써도 되겠다 싶었던 것뿐이지.”

그가 “박정희 정권의 가장 치명적인 인권유린 사건”이라 확언하는 인혁당 사건. 그것이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의 진실규명 대상에 오른 시점과 책의 출간이 일치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희한한 우연”이다.

‘푸른 혼’은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8명의 희생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중편 6편이 모두 그들의 실화에서 발아했다.“소설을 쓰느라 한 박스가 넘는 관련 자료들과 몇년을 씨름했다.”는 그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사실(史實)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무미건조한 르포가 되지 않게 글에 향기를 불어넣으려 애를 많이 썼다. 처절한 고문과 폭력장면을 묘사하지 않은 건 그래서였다.

“역사적 사실 문학적 표현 노력”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등 희생자들은 이름을 바꿔 작품에 등장한다. 예컨대 여정남은 ‘여의남’이란 주인공이 되어 가려진 현대사의 진실을 고발한다. 헌헌장부였다가 모진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된 여의남은 대처승의 아들로서 떳떳이 죽음을 맞는 것으로 묘사했다(‘여의남 평전’).

10년째 대구 팔공산에서 양봉일을 하다 느닷없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사형당하는 주인공(‘팔공산’),1960년대 인혁당 사건에 연루됐다가 10여년만에 다시 누명을 쓰고 숨지는 39세의 남자(‘청맹과니’),8명의 희생자들을 처형 순간에 한 자리에 모아 혼을 위로하는 남자(‘투명한 푸른 얼굴’)….“본디 현실에 일어나는 일이 곧 소설인 법”이라는 작가의 말에 새삼 육중한 무게가 실린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소설”

200자 원고지 1600장을 훌쩍 넘는 소설. 작가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애착이 간다.”라며 보듬어 안는 소설에는 어쩌면 처음부터 태생적인 부채 같은 게 있었다.

“희생자들의 연고지가 대부분 내 고향인 대구였고, 그들이 자주 만나 회포를 푼 약전골 일대가 내 가족이 전쟁 후 한 세월을 힘겹게 넘겼던 동네였다.”고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터졌을 때 가난한 출판사 직원이었다는 그는 “나중엔 그들에게 영치금을 넣어주기도 했다.”며 돌이켰다.

“소설 말고는 아무것도 말하기 싫어” 이번엔 그 흔한 얼굴사진조차 책날개에서 빼버렸다.30년 묵힌 고집을 풀었으니 다음엔 뭘까.“완전히 다른 스타일. 자유인 이야기가 될 거요. 폭력전과 5범과,6.25때 포로수용소 간수였던 조부의 이야기가 오락가락 엮이는. 마르케스처럼 과거와 현재가 혼융하는 그런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김명국 기자 daunso@seoul.co.kr
2005-02-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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