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상에 그 후손’.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1595∼1671)의 집안에 꼭 맞는 말이 될 것 같다.이경석은 대(大)문장가이자,병자호란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몫을 한 인물이다.
경기도박물관은 지난해 가을 이경석이 2004년 ‘4월의 문화인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경석 특별전’을 열 것을 서슴지 않고 결정했다.이경석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박물관이기 때문.
경기도박물관은 1996년 설립준비에 들어가면서부터 도내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집·정리하고자 각지로부터 유물을 기증받는 운동을 펼쳤다.이 때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 바로 이경석의 후손인 전주 이씨 백헌상공파.성남시 석문동에서 가통을 이어온 이경석의 후손들은 2000년 보물 제930호 궤장 및 사궤장연회도첩을 비롯한 문중 유물을 일괄 기증했다.
궤장이란 노신(老臣)들에게 필요한 의자와 지팡이다.20년 이상 정승을 지내야 궤장을 하사받았다.이경석의 궤장도 1669년 현종이 내린 것이다.이경석은 병자호란 당시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이른바 삼전도비의 비문을 지었을 만큼 뛰어난 현실인식을 갖고 있었다.훗날 효종의 북벌계획이 청에 알려졌을 때는 모든 책임을 영의정인 자신에게 돌려 극형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을 만큼 용기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경기도박물관은 백헌 문중이 기증한 유물을 바탕으로 ‘난세(亂世)의 명재상 이경석’특별전을 12일부터 새달 11일까지 연다.출품되는 95점의 유물 가운데 백헌 문중의 기증유물이 71점을 차지한다.궤장과,청흥군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등 보물을 비롯, 효자정려문,문과중시 장원급제 교지,연지기로회첩 등 이경석 관련 유물,그리고 이경석의 후손으로 서예의 대가인 원교 이광사의 행서병풍도 나온다.이종선 경기도박물관장은 “국난을 맞아서는 나라를 구하는 데 힘쓰고,정쟁이 한창일 때는 붕당의 폐해에서 벗어나고자 탕평에 노력을 기울인 이경석의 삶은 요즘처럼 어지러운 정치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면서 “선조의 유물은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가장 훌륭히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경기도박물관은 지난해 가을 이경석이 2004년 ‘4월의 문화인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경석 특별전’을 열 것을 서슴지 않고 결정했다.이경석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박물관이기 때문.
경기도박물관은 1996년 설립준비에 들어가면서부터 도내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집·정리하고자 각지로부터 유물을 기증받는 운동을 펼쳤다.이 때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 바로 이경석의 후손인 전주 이씨 백헌상공파.성남시 석문동에서 가통을 이어온 이경석의 후손들은 2000년 보물 제930호 궤장 및 사궤장연회도첩을 비롯한 문중 유물을 일괄 기증했다.
궤장이란 노신(老臣)들에게 필요한 의자와 지팡이다.20년 이상 정승을 지내야 궤장을 하사받았다.이경석의 궤장도 1669년 현종이 내린 것이다.이경석은 병자호란 당시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이른바 삼전도비의 비문을 지었을 만큼 뛰어난 현실인식을 갖고 있었다.훗날 효종의 북벌계획이 청에 알려졌을 때는 모든 책임을 영의정인 자신에게 돌려 극형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을 만큼 용기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경기도박물관은 백헌 문중이 기증한 유물을 바탕으로 ‘난세(亂世)의 명재상 이경석’특별전을 12일부터 새달 11일까지 연다.출품되는 95점의 유물 가운데 백헌 문중의 기증유물이 71점을 차지한다.궤장과,청흥군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등 보물을 비롯, 효자정려문,문과중시 장원급제 교지,연지기로회첩 등 이경석 관련 유물,그리고 이경석의 후손으로 서예의 대가인 원교 이광사의 행서병풍도 나온다.이종선 경기도박물관장은 “국난을 맞아서는 나라를 구하는 데 힘쓰고,정쟁이 한창일 때는 붕당의 폐해에서 벗어나고자 탕평에 노력을 기울인 이경석의 삶은 요즘처럼 어지러운 정치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면서 “선조의 유물은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가장 훌륭히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2004-03-10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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