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 집권’ 꿈꿨던 좌파 지도자 차베스

‘종신 집권’ 꿈꿨던 좌파 지도자 차베스

입력 2013-03-06 00:00
수정 2013-03-0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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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정책’ 빈민층 지지 힘입어 14년 통치암에 발목 잡힌 권력욕…집권 4기 취임식 미루다 ‘절명’

5일(현지시간) 암과 끈질긴 사투 끝에 숨을 거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14년간 장기 집권해 온 중남미의 대표적 좌파 지도자이다.

1998년 첫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 내리 세 번이나 연임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종신 대통령’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11년 중반 발병한 암으로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작년 12월 네 번째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기약없는 투병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는 투병 와중에 측근들을 통해 회복을 다짐했지만 결국 암에 발목이 잡히면서 집권 4기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숨을 거뒀다.

1954년 7월 수도 카라카스 남서쪽 시골마을인 사바네타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어린 시절 야구 선수와 함께 화가를 꿈꿨던 평범한 아이였다.

가난했던 탓에 큰 형인 아단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해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사관학교에서 일찌감치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젊은 군 장교를 중심으로 정치그룹을 조직해 지도자로서 야망을 키웠다.

차베스가 대중에게 존재감을 처음 드러낸 것은 1992년 동료 장교들과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다.

비록 그가 주도한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됐지만 “모든 것을 홀로 책임지겠다”는 발언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태도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던 당시 정치 풍토에서 뒤로 물러섰지만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지도자로 자신을 각인시켰다는 게 차베스의 행적을 기록한 이들의 얘기다.

차베스는 쿠데타 실패 뒤 2년간 감옥생활을 한 뒤 대중 정치인으로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했다.

1994년 3월 석방된 차베스는 정치 혁신을 모색했고 과거 사회주의 모임이었던 ‘볼리바르혁명운동(MBR-200)’을 MVR(제5공화국운동당)로 개칭한 뒤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과 연대해 좌파연합인 애국전선(PP)을 결성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99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56%가 넘는 지지를 받아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후 기존 의회를 해산하는 ‘제헌의회’ 전술을 통해 도입한 ‘신헌법’ 아래에서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치러 다시 권좌에 올랐다.

2002년에는 반대파들의 총파업과 쿠데타로 위기를 맞았지만 지지자들의 충성이 지리멸렬했던 반대파들을 압도하면서 다시 대통령궁으로 돌아왔다.

그는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빈민층의 지지 속에 3선 가도에 성공했다.

차베스는 2009년 국민투표를 통해서는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를 관철시켰고 지난해 10월 암과 싸우면서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상 첫 야권 통합후보로 나온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누르고 4선 고지에 올라 20년 장기 집권의 토대를 완성했다.

그러나 10월 선거 운동기간 받았던 극심한 피로는 차베스를 사지로 내몰았고, 올 1월 예정됐던 대통령 취임식 식장조차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게 됐다.

무한 권력에 대한 욕망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한 셈이다.

그간 차베스를 바라봐 온 시각은 극단적으로 양분됐다.

국내 빈민층과 그를 따랐던 중남미 좌파국가 수장들의 지지는 강고했던 반면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는 ‘독재’라는 꼬리표가 붙여졌다.

빈민 중심의 정책을 폈던 탓에 국내 중산층 이상 국민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차베스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이는 흐트러지지 않는 지지기반을 다지는 원동력이었다.

차베스는 2005년부터는 ‘페트로카리브’ 프로그램을 통해 역내 국가들에 국제 시세보다 싸게 원유를 공급하며 경제적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반대파들은 이를 퍼주기 정책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좌파국가들에 차베스는 돈 많은 ‘맏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반면 만 14년 간의 집권기간 1천개가 넘는 외국 기업을 제멋대로 국유화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던 언론사 등을 거세게 압박하면서 시장원칙과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아오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해 온갖 악담을 퍼붓는 한편 미국과 적대전선을 형성한 쿠바와 이란 등과 관계는 오히려 돈독히 하면서 서방국가들로부터는 껄끄러운,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인식됐다.

베네수엘라 현지에서는 막대한 석유가 없었다면 차베스와 같은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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