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사린 버냉키, 첫 기자회견 ‘사고’없이 소화

몸사린 버냉키, 첫 기자회견 ‘사고’없이 소화

입력 2011-04-28 00:00
수정 2011-04-2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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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처음 열린 기자회견이었지만 빅뉴스는 없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종료 후 연준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무런 사전 조율없이 기자들의 날선 질문을 받았다.

1914년 연준이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연준 총재가 통화정책 방향에 관해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준이 2008년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무제한의 발권력을 동원, 대형 금융회사들에 구제자금을 쏟아 부은 것을 문제삼아 의회가 “연준을 제대로 감시.감독해야 한다”며 칼을 빼들려고 하자 버냉키 의장이 연준 정책의 투명성 제고를 약속하면서 내놓은 카드가 바로 의장의 정례 기자회견이다.

금융시장의 최후 보루인 중앙은행의 수장은 원래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시중의 돈줄을 죄고 푸는 역할을 맡은 중앙은행장의 말 한마디에 채권값이 급등하거나 곤두박질치기도 하며 주가나 환율 등 여타 지표들도 덩달아 춤을 추기 때문에 중앙은행장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되도록이면 피하려 한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마주한 버냉키는 그러나 사전에 철두철미하게 대비한 덕분인지 무난하게 기자회견을 소화했다.

시장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오해없이 제대로 전달된 탓에 그의 회견 후 마감된 뉴욕 증시는 100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채 거래를 마침으로써 버냉키의 기자회견은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그의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1987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직후 NBC방송의 ‘언론과의 만남’에 출연, 장시간 인터뷰에 응했으나 다음날 미국의 주가가 사상 최대의 폭락세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그린스펀은 이후 재임중 한번도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버냉키는 이번 기자회견에 앞서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비롯해 평소 정례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로부터 조언을 얻고 실전훈련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버냉키 의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앞서 15분 정도 모두발언을 통해 FOMC 회의에 보고된 성장률 전망 수정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경기상황 전반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후 약 45분간 10여명의 기자들로부터 즉석 질문을 받으면서 한시간 동안 생중계 카메라 앞에 앉아 답변했지만 특별히 꼬투리를 잡힐 만한 문제발언은 하지 않았다.

학자출신인 버냉키 의장은 극단을 피해가는 절묘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그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버냉키에 대한 인물평을 하면서 “버냉키의 손(hand)이 3개가 아닌게 천만다행”이라고 꼬집었다.

버냉키가 “한편(on the one hand)으로는..다른 한편(on the other hand)으로는..” 하는 식의 양다리 걸치기와 같은 모호한 화법을 즐겨구사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이날도 가급적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원론적인 답변과 이미 널리 알려진 연준의 방침을 되풀이면서 기자들의 예리한 질문을 받아 넘겼다.

그러나 잔뜩 기대를 안고 회견장에 진을 친 기자들에게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성의’를 보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버냉키는 경기부양 조치를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시작하는 시기를 추론할 수 있는 단서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FOMC 성명에 “상당기간에 걸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표현이 유지되는 한, FOMC 회의가 최소 2차례 더 열릴 때까지는 금리 인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FOMC 회의가 6주마다 열리기 때문에 “상당기간에 걸쳐..”라는 표현이 삭제된 후 적어도 3개월 후에는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버냉키는 “출구전략의 시행 여부는 향후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의 흐름에 좌우될 것”이라고 말해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준은 앞으로 매년 4차례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올해는 이번을 시작으로 하반기에 2차례 더 회견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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