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 박사는 임신 21주 뒤에도 낙태 수술을 시행하는 미국 내 만기 낙태 시술가 3명 중 1명이었다. 이 때문에 그에겐 지난 30년간 낙태 반대론자들의 공격과 소송이 뒤따랐다. 1984년에는 병원 지붕이 폭발로 무너졌고, 93년에는 두 팔에 총격을 당했다. 91년에는 여름 내내 2000명의 시민들이 그의 병원 앞에서 낙태 반대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낙태 찬성론자들에겐 “인간 자유의 수호자”로 칭송받지만, 반대편에서는 “나치 전범”에 비유되는 등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미국에서는 지금껏 낙태 반대운동으로 의사 3명 등 최소 7명이 살해됐다고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틸러의 죽음은 바넷 슬레피안의 죽음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낙태 시술 의사와 병원을 대상으로 폭력이 격화됐던 1990년대로 회귀하는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전했다.
이번 사건은 정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오바마 대통령은 틸러의 부고를 들은 직후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며 “폭력 같은 흉악한 행위로는 (논쟁을) 해결할 수 없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틸러의 죽음은 오바마 자신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부터 낙태 지지 입장을 밝혀온 그는 2주 전에도 가톨릭계 학교인 노트르담대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자.”며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해 캠퍼스 안팎으로 반발을 샀다.
여기에 오바마가 대법관으로 지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상원 인준청문회를 앞두고 있어 낙태 논란은 더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토마요르는 지난 92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던 터라, 보수파들의 집중포화를 맞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