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인 난 나치 마스코트였다”

“유대인인 난 나치 마스코트였다”

이순녀 기자
입력 2007-08-22 00:00
수정 2007-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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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이던 1941년 10월이었다. 나치 친위대 병사들은 내게 군복과 작은 총을 두 자루 쥐어줬다. 나는 나치의 구두를 닦거나 물을 길어 주고, 불을 켜는 등 심부름을 맡았다. 그러나 가장 큰 임무는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다. 마스코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가족을 잃은 벨로루시 출신의 한 유대인 소년이 나치 친위대(SS·Schuth Staffel)의 마스코트로 3년간 지내야 했던 기구한 사연이 공개됐다. 주인공은 호주에 사는 알렉스 쿠르젬(70). 수십년 동안 과거를 숨겨오다 1997년에야 비로소 부인과 자녀에게 사실을 털어 놓은 쿠르젬은 최근 자서전 ‘마스코트’를 통해 오래된 비밀을 공개했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이 21일 보도했다.1941년 10월20일 나치가 벨로루시의 고향 마을을 침공하면서 그의 운명은 격랑에 휘말렸다. 당시 다섯살에 불과했던 그는 부모와 형제가 모두 죽임을 당하는 와중에 가까스로 숲속으로 피신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죽은 병사들의 군복에서 먹을 것을 구해 목숨을 연명하며 숲에서 9개월을 보내다 마을 주민에 발견돼 독일군 병사에게 넘겨진 그는 “나를 죽이기 전에 빵 한 조각만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독일 병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병사에게 너를 러시아 고아라고 알리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이후 SS는 그에게 유대인을 색출해 수용소로 보내는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1944년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SS사령관은 그를 라트비아의 한 가정으로 보냈고,5년 후인 1949년 그는 호주로 건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서커스단에서 일하다 TV수리공이 되어 멜버른에 정착, 호주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유럽을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너의 과거는 모두 잊어라. 너는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라고 굳게 다짐했다는 쿠르젬은 가족에게 과거를 밝힌 후에야 고향 마을을 다시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본명이 ‘일리야 갈페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라트비아의 한 기록영화에서 어린 시절 SS복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7-08-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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