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임병선기자|‘발칸의 도살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발칸반도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정의의 심판대’에서 전쟁과 학살의 진실을 밝히기도 전에 돌연사로 숱한 비밀과 진실을 덮고 생을 마감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운영하던 네덜란드 헤이그의 감옥에서 11일 오전(현지시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64)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지난 2002년부터 전쟁범죄와 인권유린 등 66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다.
그는 대(大)세르비아 건설을 주창하며 크로아티아전쟁(1991∼95년)과 보스니아 내전(1992∼95년)을 일으켰던 주범이며 보스니아의 7000여 이슬람 교도 학살과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 1만명 이상에 대한 ‘인종청소’를 명령한 냉혈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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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설 규명 위해 곧바로 부검
ICTY는 이날 성명을 내고 밀로셰비치가 감방 침대에서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자연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과 변호인은 “밀로셰비치가 사망 전 자신을 독살하려는 음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며 모스크바에서 시체 부검을 실시할 것을 요청했다.
생전에도 밀로셰비치는 고혈압과 심장질환 등을 호소했고 이로 인해 재판이 수차례 중단됐다.ICTY는 지난달 지병 치료를 위해 가족들이 있는 모스크바로 보내 달라는 밀로셰비치의 청원을 거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미망인 미라야나 마르코비치와 형 보리슬라프는 “ICTY가 그를 살해했다.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망 전날 독살우려 편지 썼다
밀로셰비치의 변호사 젠코 토마노비치는 12일 밀로셰비치가 사망 전날 자신에 대한 독살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썼다고 주장했다. 토마노비치는 이날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앞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밀로셰비치의 6쪽짜리 자필 편지 사본을 기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재판소가 모스크바 방문을 거부하는 바람에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가세했다. 러시아는 그의 인종청소를 지원했으며 1999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코소보 무력 개입에도 반대하는 등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ICTY는 유족의 요구를 묵살한 채 12일 네덜란드 법의학연구소에서 독일 법의학연구소(NFI) 주도로 세르비아 의료진도 배석시킨 상태에서 시체 부검과 독극물 검사를 진행했다.
●“인과응보” “정의의 심판 물 건너가” 엇갈려
희생자 유족들은 “끝나지 않은 재판으로 인해 인류의 비극이 역사의 뒤로 사라지게 됐다.”면서 “수많은 이를 희생시킨 전범에게 신이 심판을 내린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한 간부는 논평에서 “희생자 유족에겐 좌절이며 정의엔 역행”이라고 평했다. 스티페 메시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그가 재판 말미에 선고를 받지도 않은 채 죽은 것은 유감”이라고 개탄했다.
고국 세르비아에서도 동정어린 애도와 증오의 표출 등 극단적인 반응으로 엇갈렸다고 BBC는 전했다. 유엔 대사를 지낸 리처드 홀브룩은 “서구에서 나만큼 밀로셰비치를 잘 아는 이는 없다.”며 “그를 위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죽음은 세르비아와의 ‘느슨한 국가연합’으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하는 5월21일 몬테네그로 주민투표와 현재 진행 중인 코소보(알바니아계) 지위 협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992년 옛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는 물론 알바니아와 유럽연합(EU)까지 우려 속에서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lotus@seoul.co.kr
2006-03-1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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