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 日 “엄청난 희생” 美 “도청후 투하 결정”

[히로시마 원폭투하 60주년] 日 “엄청난 희생” 美 “도청후 투하 결정”

이춘규 기자
입력 2005-08-06 00:00
수정 2005-08-0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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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임병선기자|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되자마자 한 순간에 7만 1000명이 목숨을 잃고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만 5년 동안 12만 9000여명에 이르렀다. 당시 35만명이던 히로시마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재앙이었다.

그러나 이 참사는 3개월 전 독일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에 매달리던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투항을 이끌어내 결과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해냈다는 역설을 낳았다.

피폭 60주년을 맞는 일본의 표정은 당시 군부가 항복을 준비 중이었는데 미국의 무리수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됐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은 미국의 역사 교육에서 원폭의 위험이 작게 취급되고 있다고 볼멘소리까지 낸다.

미국 보수 진영을 대변하는 주간 위클리 스탠더드 최신호(8일자)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도청된 일본군의 무전 교신 내용을 보고받은 결과, 일본 군부가 항복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1960년대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은 이미 희망을 잃은 재앙적 상황이었으며, 일본 지도자들도 그해 여름부터 항복을 준비 중이었고, 일본 외교관들의 통신을 도청한 결과 미국 지도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원폭 투하 결정이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42년 중반부터 각국 외교관이나 일본 군대 등의 통신 내용을 도청한 전문 조직 ‘울트라’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잡지는 전했다.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미국과 종전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 내용은 3∼4건에 불과했으며 13건 이상은 끝까지 결사 항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울트라팀은 특히 미국이 그 해 11월 규슈(九州)를 시작으로 본토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올림픽 작전’의 핵심을 일본 군부가 간파하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는 점을 파악, 바짝 긴장했다.

이런 도청 결과와 일본 침공작전의 노출에 따라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 투하로 더 많은 인명의 희생을 막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이같은 내용을 기고한 2차 세계대전 전문 역사학자인 리처드 프랭크는 “일본이 항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수정주의자들의 가설은 모두 틀렸다.”고 강조했다.

taein@seoul.co.kr
2005-08-0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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