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이슈-베일 벗는 핵암거래망] 칸 ‘核슈퍼마켓’ 거래처 속속 드러나

[월드이슈-베일 벗는 핵암거래망] 칸 ‘核슈퍼마켓’ 거래처 속속 드러나

입력 2004-03-06 00:00
수정 200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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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68) 박사가 십수년간 운영해온 국제 핵 암거래망이 드러나면서 핵무기를 동네 슈퍼마켓에서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기우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리비아와 이란이 파키스탄을 통해 농축우라늄과 핵시설 부품을 사들였다.북한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북측도 파키스탄으로부터 고농축우라늄(HEU)을 사들였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10여년의 탈냉전시대를 거치며 동·서간 무기경쟁은 민족간·종교간·국가간 갈등으로 옮겨갔다.더불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야망이 이들 몇몇 국가들에서 오사마 빈 라덴 등 테러리스트와 테러단체들로까지 확산되면서 국제 핵 암거래 네트워크도 거미줄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거미줄처럼 퍼진 암거래망

소문과 의혹만 난무했던 국제 핵암시장의 실체는 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서명에 합의한 이란과 12월 전격 핵포기를 선언한 리비아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확인됐다.독일 등 최소 7개국이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실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칸 박사의 핵암거래망은 파키스탄이 경쟁국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1970년대 핵무기 기술을 획득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80년대까지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치중하다 90년대 핵무기를 보유한 뒤로는 핵무기를 손에 넣길 원하는 다른 국가들에 엄청난 돈을 받고 팔았다.중심에는 칸 박사가 있었고,중동(발주)-유럽(기술제공)-아시아·중동(부품생산·수송)을 잇는 핵암거래망을 구축했다.암시장에서는 핵무기 설계도부터 관련 설비와 물질은 물론 애프터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개인적 유대관계 활용 기술이전

파키스탄·말레이시아·영국·스위스 경찰 등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칸 박사는 1970년대 네덜란드의 연구소에서 일할 때부터 유럽 각국의 핵과학자들 및 기술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이같은 개인적 유대관계를 최대로 활용해 핵기술을 이전받았다.

현재까지 밝혀진 암시장에서의 핵관련 기술 제공처는 독일·스위스·영국 등 유럽과 파키스탄·중국이다.특히 1980년대 파키스탄에 핵 관련 장비를 판매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조사를 받은 유럽 기업들이 주요 역할을 했다.

칸 박사는 대학 친구 2명을 포함해 유럽 기업인들의 핵관련 장비 공급에 크게 의존했다.네덜란드 출신의 행크 슬레보스는 칸 박사의 친구중 한명으로 1985년 파키스탄에 핵무기 관련 장비를 판매하려 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독일 출신의 또 다른 친구인 하인츠 메부스는 80년대 초반 파키스탄에 우라늄 농축장비를 제공한 혐의로 당시 서독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알브레히트 미굴레를 도와 핵관련 장비를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말 파키스탄에 핵 관련 장비를 수출하다가 영국 정부의 조사를 받았던 엔지니어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피터 그리핀(68)은 최근까지도 아들과 함께 두바이에 ‘걸프 테크니컬 인더스트리스’라는 회사를 차리고 칸 박사의 핵확산을 후원해 왔다.그리핀은 주문받은 핵 부품들을 생산 계약을 맺은 말레이시아의 스코미정밀엔지니어링(SCOPE)이라는 공장에서 자신의 감독하에 생산해왔다.이 회사는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이 대주주로 있다.그리핀은 또 리비아를 위해 우라늄농축공장을 설계했고 리비아 기술자들을 스페인에서 연수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칸 박사의 오랜 동료인 스위스의 기술자 프리드리히 티너(67)도 1996년까지 금수품목인 특수밸브를 이라크에 판매해 왔다.IAEA는 핵확산 혐의를 받고 있는 스위스인과 기업 17명의 명단을 경찰에 넘겼다.

스리랑카 출신의 사업가 부하리 셰드 아부 타히르가 두바이에 세운 ‘SMB 컴퓨터스’라는 회사는 ‘칸조직’의 핵심이다.고객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공급자와 연결해 주고 ‘물건’을 생산·수송하는 중개인 역할을 해왔다.타히르는 칸 박사가 90년대 중반 이란에 핵장비를 300만달러의 현금을 받고 넘겼고,중고 원심분리기 부품 2개도 파키스탄에서 지난 94년과 95년 이란 선박에 선적했다고 밝혔다.칸 박사는 97년부터 리비아와 접촉,2001년 농축우라늄을 리비아에 보냈다고 증언했다.

‘칸 주식회사’는 빙산의 일각

현재 미 연방검찰은 칸 박사의 핵네트워크와는 별개로 보이는 남아공에 기반을 둔 이스라엘 사업가 아셰르 카르니(50)를 구속했다.그는 수출이 금지된 핵무기 뇌관을 파키스탄에 수출하려 한 혐의와 함께 인도와도 거래를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사실을 지적하듯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지난달 리비아 방문 직후 인터뷰에서 칸 박사의 핵암거래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그는 리비와와 이란에 대한 조사결과 핵확산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며 이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대책을 서둘러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IAEA는 오는 8일부터 빈에서 정기이사회를 열고 이란과 리비아에 대한 사찰결과를 보고한다.여전히 베일이 벗겨지지 않은 국제 핵암거래망이 추가로 밝혀질지 주목된다.

김균미기자 kmkim@˝
2004-03-06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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