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문워커스’

지나치게 진지하고, 거대한 명분을 좇는 권력의 탐욕은 때로는 조롱과 냉소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풍경들을 연출하곤 한다. 물론, 전제가 필요하다. 몇 걸음 떨어진 바깥에서 봐야 한다. 그 시대 안에 함께 있으면서 그 권력에 의해 피해를 겪는 이들 혹은 역사에 대한 냉소로까지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문 워커스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인 프랑스 감독 앙투완 바르두 자퀘트의 영화 ‘문워커스’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속에 벌어졌을 법한 상황을 영화로 다루고 있다. 권력이 벌이는 과도한 경쟁과 집착은 이렇듯 전복적 상상력과 코미디를 낳게 된다. 예매 사이트를 오픈하자마자 무려 8초 만에 전석이 매진됐을 정도로 기대가 높았다.

1969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낸다. 소련은 이미 개, 고양이를 태운 스푸트니크호를 달에 보내는데 성공했고, 우주경쟁에서 소련에 뒤처진 미국은 자존심이 상한다. 달 착륙만큼은 우리가 소련보다 먼저 하자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아폴로 1호부터 10호까지 줄줄이 실패를 거듭하자 조바심이 난다. 그러자 미국 정보기관 CIA가 앞장서서 음모를 꾸민다. 아폴로 11호를 다시 쏘고, 아직 달 착륙의 기술적 완성도가 확인되지는 않았으니 실패에 대비해 달 착륙 영상을 가짜로 만들어 놓자는 것이다. 누가? 바로 1년 전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을 만들어서 많은 이들의 찬탄을 자아내게 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제법 그럴싸한 계획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스탠리 큐브릭을 찾아 달 착륙 영상을 만들도록 하기만 하면 된다. CIA 정예요원 키드만(론 펄먼)이 그 임무를 맡는다. 문제는 키드만이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영국으로 가던 도중 큐브릭의 사진에 커피를 쏟아 제대로 식별할 수 없게 흐릿해졌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여러 해프닝이 거듭됨은 물론이다. 술과 담배, 아편에 찌든 히피 감독, 인생의 루저로 당장 돈이 필요한 매니저 조니(루퍼트 그린트), 마약 중독과 무기력증에 빠진 평화주의자 가짜 큐브릭(로버트 시한) 등까지 어우러져 온갖 소동을 벌인다.

여기에 중무장한 CIA 요원들은 유럽 갱단들에게 허망하게 당하고 만다. CIA는 인류를 속이기 위한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려 하고, 이 찌질한 예술가들은 CIA를 속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조리한 상황의 연속이다.

영화는 애써 결론을 내지는 않는다. ‘스탠리 큐브릭’이 아닌 B급 감독이 만든 가짜 달 착륙 영상이 잘 편집돼서 전 인류를 속인 것인지, 실제로 달 착륙에 성공했는지 굳이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19년 동안 지속적으로 표방해온 부분은 무조건적인 전복이나 장르 영화의 추구만은 아니다. 가치와 형식, 현실을 뒤집고 비틀어 보며 궁극적으로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몫이 더 큰 이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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