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일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정부 위원회안이 나오기 하루 전인 7일에는 농협중앙회장의 조합원과 국민에 대한 사죄와 함께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자체개혁안의 골격이 발표되었다. 정부안 발표 직전에 거의 비슷한 내용의 농협 자체 개혁 방안이 나온 데 대해 긍정적 평가와 함께 급한 대로 소나기는 피하자는 숨은 계산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대통령의 질책으로 꺼져가던 개혁불씨를 되살려 놓은 형국인 최근 한 달 남짓 사이에 정부와 농협 양쪽이 내놓은 개혁안의 핵심은 ①중앙회장의 권한 축소와 이사회 기능의 활성화 ②회원조합의 합병촉진과 농업인의 조합선택권 부여 ③품목별조합 육성과 조합공동사업법인의 활성화 등 경제사업 강화로 요약될 수 있다. 중앙회 및 회원조합의 지배구조 개선, 영세·적자 구조의 회원조합 규모화와 전문화, 신용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 조정을 통한 경제사업의 강화 등은 조합원의 이익에 봉사하는 농협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데 있어 중요한 개혁과제에 속한다.
그렇지만 이들 몇 가지 어젠다를 담은 법 개정만으로 정책사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태생적 한계, 공룡 중앙회가 약체 회원조합 위에 군림하는 ‘농협관료주의’, 조합원의 주인의식 결여에서 오는 ‘임직원을 위한 조합’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그 뿌리가 너무 깊다.
1907년 통감부 시절 지방금융조합에서 출발한 우리 농협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제도개편 과정에서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정부-중앙회-회원조합-조합원’ 간의 관계가 재조정되어 왔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 간에는 각종 정책사업과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농정 하부기구의 역할에 따른 과도한 정부의존적 체질이 온존되어 왔으며, 중앙회와 회원조합 사이에는 중앙회의 거대한 권한과 조직이 회원조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관료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조합의 주인인 농민조합원들은 낮은 의식수준과 조합사업 참여 유인의 결여로 조합운영에 무관심한 채 조합은 ‘임직원을 위한 신이 내린 직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농협개혁이 참으로 성공하려면 불과 두 달 사이에 법 개정을 완료하는 식의 성급한 접근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체계적·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진지한 설득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21세기 한국 농업·농촌의 도약에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농협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기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통령이 ‘농협이 센지 내가 센지’ 두고 보자고 했던 전임 대통령의 처참한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1990년대 이래 3대에 걸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한결같이 이루지 못한 농협개혁에 사활을 건 관심과 노력을 쏟아부어 벼랑에 선 우리 농업·농촌을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을 포함해서 개혁과정에 가로놓여 있는 수많은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에 스스로 앞장서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09-01-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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