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만초천(蔓草川)

[씨줄날줄] 만초천(蔓草川)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4-03-25 00:17
수정 2024-03-2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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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소문역사공원 자리에 1927년 개장한 경성부수산시장이 나타난다. 광복 이후에도 존속하던 이 서울 최대 수산시장은 1971년 노량진으로 옮겨 갔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보이는 서소문공원 일대는 조선시대 칠패(七牌) 거리였다. 어물전이 밀집한 서울의 대표적 상업 중심지의 하나였다.

칠패에 생선가게가 집중적으로 들어선 것은 만초천(蔓草川)이 바로 곁을 흘렀기 때문이다. 만초천은 현저동 무악재에서 발원해 서대문 사거리를 거쳐 서부역과 청파로, 원효로를 따라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길이 7.7㎞의 물줄기다. 서해 바다 수산물을 한강과 만초천 물길로 도성 주변까지 신속하게 나를 수 있었으니 어물전이 번성할 수 있었다.

맛집거리로 알려진 독립문 영천시장이 1967년 복개된 만초천을 따라 형성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개 이후 상인들이 모여들어 장사를 시작한 것이 영천시장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서대문 사거리 방향으로 흐르는 만초천은 경찰청을 지나 동쪽으로 굽이치는데 그곳에 1974년 세워진 서소문아파트가 있다.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 재개발이 임박한 이 아파트가 긴 곡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만초천을 따라 지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건국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하륜이 한강 운하를 파자고 주장한 것은 흥미롭다. 그는 1413년(태종 13) “경기 군인과 도성 하급 군직, 군기감 별군 등 1만 1000명을 징발해 양어지를 파고 숭례문 밖에 운하를 파서 배를 통행하게 하소서”라고 주청했다. 당시 많은 신하가 찬성했음에도 임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하륜의 한강 운하란 만초천을 확장해 큰 배가 도성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노성철 서울시의원, 동작구 시비 투자사업 간담회 참석

서울시의회 노성철 의원(더불어민주당·동작3)이 지난 22일 동작구청이 주관한 ‘동작구 시비 투자사업 주요현황 간담회’에 자리를 함께하고, 구의 핵심 사업 추진 현황과 2027년도 서울시 예산 확보 방안을 머리 맞대어 논의했다. 동작구 지역구 서울시의원 4명을 초청해 진행된 이번 간담회 자리에는 동작구청장을 비롯해 관련 국·과장급 간부들이 다수 참석하여 주요 현안의 경과를 공유하고 서울시 차원의 재정 지원 필요성을 집중 설명했다. 특히 동작구청 측이 관내 시의원들을 일제히 초청하여 시비 지원이 시급한 사업들을 총망라해 브리핑하고 협조를 공식 요청한 것은, 지난 민선 8기 지방정부 체제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이는 산적한 지역 현안을 속도감 있게 해결하고 서울시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구청 차원에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협치를 도모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노 의원은 동작구청이 서울시에 시비 지원을 요청한 사업 가운데 상도1동과 사당3·4·5동 관련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 상황과 예산 확보 가능성을 점검했다. 주요 사업은 ▲상현중학교 옹벽 정비 및 도로 개선 10억원 ▲까치산 무장애숲길 2단계 조성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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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추진하면서 만초천 복원을 언급했지만 최근 공개된 개발계획안에는 ‘물길의 흐름을 이어받아 수공간을 조성한다’는 대목만 보인다. 하천의 제 모습 살리기가 아니라 이미지만 재현한 경복궁 동쪽 중학천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잃어버린 만초천의 모습을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2024-03-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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