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몰락/

[씨줄날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몰락/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3-01-03 20:24
수정 2023-01-0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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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휘자로 더욱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1974년 7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일약 2등을 차지한 것이다. 동서 양 진영의 냉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 남북 관계는 1972년 7·4공동성명으로 잠깐 희망을 주었지만,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졌다.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 최고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2등을 차지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정부는 정명훈에게 김포공항부터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열어 주었다. 오픈카가 서소문을 지날 때 오색 종이꽃이 함박눈처럼 흩날렸고 연도에는 환영 인파가 가득 찼으니 한국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열렬한 환영이었다. 일찍부터 미국에 유학한 정명훈은 미국 국적으로 콩쿠르에 참가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국내 언론에 정명훈이 ‘1등 없는 2등’으로 소개된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유신 체제의 언론 정책 당국이 벌인 ‘홍보 조정’의 결과였다. 국내에서는 ‘소련이 한국인에게 1등을 주지 않으려고 장난을 쳤다’는 비판 여론마저 들끓었다. 당시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피아노 부문 1등은 오늘날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는 소련 출신의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였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경연대회로 꼽힌다. 이 콩쿠르는 그렇지 않아도 냉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58년 제1회 대회에서부터 미국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우승한 것이다. 그의 우승은 미국 사회에 한국의 정명훈 열풍 이상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감’을 안겨 주었다. 지난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으니 한국과의 인연은 돌고 또 돈다.

위세를 떨치던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병무청의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엊그제 들렸다. 앞으로는 이 콩쿠르에서 우승해도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유네스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서도 퇴출됐다.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보면 예술과 정치는 지독히도 얽히고설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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