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권 쇄신 오바마 설득 방식서 배워라

[사설] 여권 쇄신 오바마 설득 방식서 배워라

입력 2010-07-08 00:00
수정 2010-07-08 00:4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개혁 행보가 부럽다. 100년 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의료개혁을 성공시켰다. 월가의 저항을 물리치고 금융개혁도 했다. 최근 이민개혁안과 교원평가를 통한 교육개혁에도 나섰다. 미국은 쉼없이 ‘개혁 프로그램’을 전진시키고 있다. 반면 우리는 내세울 개혁 프로젝트가 많지 않은데도 그나마 야권 등의 저항에 부딪혀 있다. 정치 환경 등이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4대강 문제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 등으로 사회가 떠들썩해도 여권은 속시원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여권의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의 정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권은 첫째,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소통과 설득’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는 의료개혁 추진시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했다. 반대파 의원을 설득하고자 전용기를 이용하고 외국 순방도 연기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의원이 100여명에 이른다니 대단하다. 이쯤 되면 친이, 친박 타령이나 하는 한나라당이 부끄러워진다. 여당 내에서조차 소통이 없는 현실에서 국회의 세종시 수정안 부결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어제 청와대 개편에서 시민사회 및 대국민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사회통합수석실이 신설된 것은 소통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해서일 것이다.

강석주 서울시의원 “‘서서울문화플라자’ 설계공모 당선 환영…서남권 복합문화공간 첫걸음”

서울특별시의회 강석주 의원(국민의힘·강서2)은 지난 6일, 강서구 내발산동 일대에 들어설 ‘서서울문화플라자’의 설계공모 당선작이 최종 확정된 것에 대해 깊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강 의원은 “문화와 체육, 돌봄 인프라 확충을 간절히 기다려 온 서남권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 드디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며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서울문화플라자’는 도서관, 생활체육시설, 서울형 키즈카페가 결합된 복합공공시설로, 총사업비 약 592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특히 주민 수요가 높은 워킹풀과 어린이풀을 갖춘 대형 수영장과 다목적 체육시설 등 생활체육 인프라가 대폭 확충된다. 상대적으로 문화·생활 SOC 인프라가 부족했던 서남권 지역에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복합시설이 조성되면, 지역 주민의 문화 향유 기회가 확대되고 가족 단위 여가활동과 생활체육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서관과 체육·돌봄 기능이 결합된 생활밀착형 공간으로서 지역사회 활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번 사업은 당초 시립도서관 중심 계획에서 나아가 생활체육과 돌봄 기능까지 결합한 복합시설로 확대되면서 주민 수요를 보다
thumbnail - 강석주 서울시의원 “‘서서울문화플라자’ 설계공모 당선 환영…서남권 복합문화공간 첫걸음”

둘째, 조직적인 ‘개혁팀’ 의 가동이 필요하다. 민간인 사찰의 배후로 지목된 ‘영포회’ ‘선진국민연대’와 같은 비선조직이 아닌 공조직을 움직여야 사단이 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매뉴얼 비서실장과 액설로드 선임보좌관과 같은 정치적 이상과 실행력을 함께 갖춘 이들을 뛰게 했다. 보고받고,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소통하는 실용적이자 개혁적인 팀들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는 필요하다. 셋째, 국회는 국정의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낸시 펠로 민주당 하원의장 등을 의료개혁 주역으로 뛰게 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의회에 가서 노상 점심 식사를 한 것도 의료 개혁을 위해서다. 어려운 국정 과제일수록 소통과 설득이라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010-07-08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