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홍 원내대표가 함께 제안한 국회폭력방지특별법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으나 필리버스터 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연말연초 국회에서는 망치와 소화기,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했다. 해외 언론들이 이를 자세히 보도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 험한 육박전보다는 낫다고 본다.
미국·영국 등 의회정치 선진국들은 필리버스터를 다수당과 소수당의 갈등 해소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 “필리버스터는 다수의 횡포 위험을 차단하는 방화벽”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야당인 공화당 소속 저드 그레그 상원의원을 상무장관에 지명했는데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예방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런 관측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지만 필리버스터는 그만큼 다수당이 소수당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제도로 정착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까지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었다. 야당 의원이 10시간 발언으로 여당의 일방 안건처리를 지연시킨 전례가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효율성을 앞세워 의사진행발언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해졌다. 야당이 필리버스터 제도를 악용해 다수결원칙 자체를 무력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도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상원 재적 5분의3이 찬성하면 토론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보완장치가 마련된다면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국회의장실과 회의장을 점거하고,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고, 국회 경위들이 동원되는 것보다 점잖게 말로 시간을 끄는 게 낫다. 그러면서 막후 협상을 더 하다 보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2009-02-05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