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진중문고의 탄생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진중문고의 탄생

입력 2021-05-25 17:28
수정 2021-05-2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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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2021. 군복무가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줄 수는 없을까.
계룡산 2021. 군복무가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줄 수는 없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징병제를 시행했다. 1942년 봄 미군은 세계 곳곳에 배치됐다. 병사들의 유일한 오락은 책이었다. 1942년 3월 구성된 전시도서협의회는 양서를 선정해 수백만 권을 배포했다. 이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지만 병사들은 무거운 양장본을 싫어했다.

1943년 초까지만 해도 병사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책은 없었다. 몇몇 출판사들이 머리를 짜내 새로운 제작 기법과 판형을 고안했다. 크기와 무게를 줄인 페이퍼백으로 만들어 군복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미국 출판계의 혁명이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선언했다. “1943년은 미국의 150년 출판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해였다.” 진중문고(陣中文庫)의 탄생이다. 문고판의 효시다.

1943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역 병사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대학 교육 및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이 제정됐다. “전쟁이 끝난 후 교육과 기술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만큼 군의 사기를 높이는 것도 없다”는 취지다.

1945년 8월에서 46년 1월까지 540만명이 전역했다. 1947~48년 미국 대학생의 절반이 참전 용사였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일반 학생들은 참전 용사들과 함께 받는 수업에 분노했다. 상대평가에서 그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일반 학생들은 참전 용사들을 가리켜 ‘평균 학점을 높이는 지겨운 인간들’이라고 불렀다.

전쟁 중 산더미 같은 책이 배급된 덕분에 군인들은 독서와 공부에 흥미를 키웠다. 진중문고는 수백만 명의 군인들에게 독서 습관을 심어 주었다. 1945년 봄 뉴욕포스트는 이렇게 자랑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군대를 보유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 용사 중 다수는 이미 전선에서 플라톤, 셰익스피어, 디킨스 등을 독파한 뒤였다. 역사, 경영, 수학, 과학, 언론, 법률에 관한 독서도 익숙했다. 전역 후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기자 그들은 전투 못지않게 공부도 잘 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폭탄이 터지는 참호 속에서도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했으니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징병제, 모병제를 두고 한동안 여론이 끓어올랐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군복무가 제대 후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배려해 주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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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2021-05-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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