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숙칼럼] 어느 독립운동가의 딸 2

[임영숙칼럼] 어느 독립운동가의 딸 2

입력 2005-12-03 00:00
수정 2005-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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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기억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특히 이념, 주체, 노선 등 다양한 특징을 지닌 우리 독립운동사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그 시대를 산 각 개인의 기억들이 기록돼야 한다. 제2, 제3의 김 할머니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며 그들의 소박한 소망이 실현되는 날이 오기 바란다.”지난 9월 ‘어느 독립운동가의 딸’이란 칼럼을 쓰면서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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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숙 논설고문
임영숙 논설고문
이 칼럼에서 언급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딸 김순희(72)씨가 지난 11월 순국선열의 날 소망을 이루었다. 아버지 김유성(1893∼1950)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은 것이다.‘제2의 김 할머니’도 최근 마주치게 됐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소망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다.

김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그 무거운 멍에를 벗고 명예회복을 하시게 되어 가슴속에 깔려 있던 한이 바람에 모두 날아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시청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으러 갈 때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나란히 담은 액자를 들고 가서 감격을 함께 했다.

한편 ‘제2의 김 할머니’는 지난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대통령표창을 받은 한락연(1898∼1947)선생의 딸 한인숙(86)씨다. 그 역시 김 할머니처럼 자신의 가족사를 글로 모두 기록해 놓았다. 한 선생은 중국 정부가 인정한 혁명열사이자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화가’(펑웬 중국미술관장)로 꼽힌다. 지난 8∼10월 덕수궁미술관에서 ‘광복60주년 기념 중국 조선족 화가 한락연 특별전’이 한·중 국립현대미술관 공동주최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사, 특히 한인숙씨의 생애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용정의 3·13항일시위 때 한씨는 어머니 최신애씨의 뱃속에 있었다. 태극기를 그려 시위자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아버지는 일본 경찰에 쫓겨 러시아로 떠났다. 그가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일곱살 때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쉬쉬하며 옷을 차려 입혀 데려간 곳(하얼빈)에서 아버지를 만났고 몇달간 함께 살던 아버지는 가족사진 한장을 남기고 또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 파리 개선문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의 자화상이 담긴 그림엽서가 날아왔다. 그후 아버지의 소식은 끊겼다.

아버지는 나중에 중국여성과 결혼했고 이 결혼식에는 중경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구 선생도 참석했다. 한씨가 다시 아버지 소식을 들은 것은 한·중 수교이후다. 이복동생들도 만났다. 광복이 되자 함경도로 돌아왔으나 자신의 두아들과 어머니를 이북에 둔 채 서울에 왔다가 6·25동란이 발발하자 충남 예산으로 피란, 이산가족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 온 그는 자신의 딸보다 더 어린 이복동생들을 껴안고 오랫동안 울었다. 중국의 이복동생들은 아버지의 묘비를 세우면서 자신들의 이름 앞에 한씨의 이름을 새겼다.

한씨는 그러나 독립유공자의 딸로 인정받지 못했다. 월남한 후 호적을 만들면서 아버지 이름을 어린시절 들었던 ‘한윤화’로 올린 탓이다. 고려공산당,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며 중국 전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넘나들었던 아버지는 ‘광우’ ‘소공’ 등 여러 이름을 사용하며 신분을 위장했다.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의 딸(아들)들이 절절한 한을 품고 살아왔을까? 칠순 팔순의 후손들마저 작고한 다음엔 누가 그들의 삶,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의 굽이굽이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까?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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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i@seoul.co.kr
2005-12-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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