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위대한 의자’에 앉은 사람

[이경형칼럼] ‘위대한 의자’에 앉은 사람

입력 2006-03-23 00:00
수정 2006-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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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한 춘분 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위대한 의자,20세기의 디자인’전을 보러갔다. 한 세기에 걸친 100개의 의자들은 저마다 작가의 예술성을 뽐내면서도 그 시대에 걸맞은 실용성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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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형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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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문화 예술인들이 ‘위대한 의자’에 앉아 촬영한 흑백 사진들이 붙어있고, 그 옆에는 같은 방식으로 포즈를 취한 국악인 안숙선씨 등 국내 문화계 인사 14명의 사진들이 걸려있다.“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라는 설명문과 함께, 문화예술인이 아닌데도 맨 먼저 이명박 서울시장이 ‘위대한 의자’에 앉아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황제 테니스’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시장이 앉은 ‘위대한 의자’는 미국의 찰스 임즈가 1948년에 디자인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당시 뉴욕현대미술관은 2차 대전 직후 어려운 경제 상황과 자원 부족을 감안하여 ‘저비용 가구 디자인’공모전을 열었는데, 바로 그때 출품됐던 작품이라고 한다. 의자의 등받이와 앉는 바닥은 거푸집으로 떠낸 하나의 플라스틱 판으로 되어 있는데, 모양은 살바도르 달리 풍의 유선형에다 헨리 무어의 조각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등받이 한 가운데 뚫려있고, 철제 다리가 목재 밑받침에 고정되어 견고해 보였다. 아름다우면서도 전후의 질박한 사회상이 묻어났다.

지금 주변에선 국민들이 뽑아준, 만들어준 ‘위대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대착오적인 처신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얼마전 ‘부적절한 동반자들과 가진 3·1절 골프 모임’으로 낙마한 이해찬 전 총리의 행적이 그랬고, 여기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때늦은 사과를 하면서도 의원직은 고수하겠다고 하는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태도가 그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시장의 이른바 ‘공짜 테니스’도 우리를 절망시키기는 마찬가지다. 비록 그가 지난 20일 테니스 파문에 대해 공직자로서 엄격한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소홀히 한 점을 시인하고 거듭 사과했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간단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테니스 파문의 행간에는 권력을 가진 자의 몸에 밴 특권 의식, 체질화된 제왕적 행보의 음습한 그림자가 읽혀진다.2003년 봄부터 지난해까지 50여 차례나 테니스장을 드나들면서 요금 정산을 한번도 챙겨보지 않았다든가, 주말에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일반인의 이용기회 박탈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더욱이 국민들이 표를 모아 만들어 주는 공직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의자’인 대통령 자리에 앉겠다고 하는 사람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률과 진정한 공복 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 수직 사회에서 다원적 수평 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시민들이 공직자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여간 엄격해지지 않았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하고,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국가 지도자로서 덕목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시장으로서는, 5·31 지방선거와 내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여야의 샅바 싸움 와중에 별것 아닌 것으로 곤욕을 치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접는 것이 옳다.‘위대한 의자’가 위대한 것은 실용성 외에 높은 예술성이 있기 때문이듯이, 앞으로 지도자는 국정 수행 능력이라는 실용성과 함께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예술 혼이 없이는 국민을 설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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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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