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의 헌법 너머] ‘확립된 관행’이 아쉬운 의회정치

[이종수의 헌법 너머] ‘확립된 관행’이 아쉬운 의회정치

입력 2020-07-05 20:38
수정 2020-07-06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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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다르지가 않았다. 총선 이후에 개원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이 순조로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애당초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어쨌든 여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한 채로 원 구성이 일단락 지어졌다. 알려져 있듯이 이번 사달은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원장을 양보받지 않으면 다른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모두 포기하겠다며 배수진을 쳤고, 그 자리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여당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그동안 원 구성 협상 결렬로 인해 국회가 수개월째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면서 대법관 등의 인사가 지체된 적이 여러 차례 있었고,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국민들의 세비 반납 요구가 드셌다.

법사위와 그 위원장 자리를 놓고서 그간 말도 탈도 많았다. 국회의 입법 절차상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서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법사위의 체계 및 자구심사를 거치도록 하는데, 법사위가 권한 범위를 넘어서 사실상 법안 자체의 통과 여부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사위를 두고서 옥상옥(屋上屋)의 상원(上院)으로도 불러 왔다. 그런데 문제를 개선할 생각은 않고서 그저 서로 빼앗기지 않으려고만 한다.

원 구성과 관련해서 헌법과 국회법에서 대강은 정하고 있는데, 국회법 제41조 제2항은 상임위원장을 “본회의에서 선거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의회에서의 승자독식제나 독일 의회에서의 안배 모델 모두가 가능하다. 양당제인 미국에서는 의석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수당이 있기 마련이어서 승자독식제가 나름 수긍된다. 반면에 다당제인 독일에서는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은 물론이고 원 구성에서도 자연스레 정당 간 합의에 의한 안배가 이뤄진다.

헌법과 국회법에서 물론 의사(議事)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규율하지만 모든 사항을 일일이 다 미리 정해 둘 수가 없다.

특히 국회법과 같은 복잡한 조직법이 그렇다. 심지어 국회 규칙으로도 선거 결과에 뒤따르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미리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종 의사와 관련해 국회사무처에서 따로 선례집을 발간해 오고 있다. 그런데 두꺼운 선례집을 뒤져 봐도 정작 원 구성에 관한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불과 4년 전에 당시 여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맡았기에 그 자리가 야당 몫이라는 확립된 관행도 없는 셈이다. 결국 이번처럼 개원에 따른 원 구성 때마다 여야 간의 힘겨루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오랜 의회주의 역사를 갖고 있는 영국과 독일 등에서는 이른바 ‘확립된 의회관행’이 정착돼 있다. 선거 결과가 어쨌든 간에 서로 지켜야 할 일종의 불문율이자 신사협정인 셈이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바닥에 붉은색으로 그어진 소드 라인(Sword Line)이 대표적이다. 2017년 9월에 독일에서 제19대 연방의회 선거가 있었다. 이어 원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가 바로 예산위원장 자리였다.

연방의회에서 그간 확립된 관행에 따르면 중요한 대정부 통제 기능을 떠맡는 이 자리가 제1야당 몫이다. 이 내용은 연방의회의 공식 웹사이트에도 나와 있다. 문제는 과거의 나치 체제를 옹호하는 극우세력들이 모여서 만든 독일대안당(AfD)이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하면서 원내 제1당과 제2당 간의 대연정 덕분에 어부지리로 바로 제1야당이 된 데에 있었다. 의회 내부에서 이 극우정당에는 도저히 예산위원장 자리를 내줄 수 없다며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확립된 의회 관행이 그대로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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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상임위원장 등 원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볼썽사나운 힘겨루기를 거듭하기보다는 의회정치에서 합의된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예컨대 어느 정당이라도 단독으로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한 경우에는 상임위원장직을 미국처럼 승자독식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안배를 하되 특정 상임위원장직을 야당 몫으로 미리 정해 두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패스트트랙 법안 사태에서의 몸싸움이 그렇듯이 국민의 대표들이 스스로 만든 국회법조차도 지키지 않으니 여기서 확립된 국회 관행 운운하는 것이 마치 ‘연목구어’(緣木求魚) 같은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2020-07-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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