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헌 칼럼] ‘메르스 사태’ 보니 선진국 되려면 멀었다

[곽태헌 칼럼] ‘메르스 사태’ 보니 선진국 되려면 멀었다

곽태헌 기자
입력 2015-06-24 18:12
수정 2015-06-2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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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헌 논설실장
곽태헌 논설실장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지만, OECD 회원국이라고 해서 선진국이라는 뜻은 아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조 4495억 달러로 세계 13위다. 선진국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1인당 GDP는 2만 8000달러 선으로 그저 그런 수준이다. 미국과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중국의 GDP는 세계 2위다. 그러나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없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8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1인당 GDP가 9만 달러가 넘어 룩셈부르크, 노르웨이에 이어 3위에 오른 카타르도 선진국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GDP나 1인당 GDP 중 어느 하나가 상위권이라고 해서 선진국은 아니다. 경제적인 실력은 기본으로 하고 국민과 정부의 수준, 문화와 인권의 수준, 언론의 자유, 정보의 공개, 각종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합격점을 받아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니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소수이지만 몰지각한 환자와 격리자, 시민들의 행태는 선진시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첫 확진환자는 중동국가에 방문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결과적으로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 다른 확진자 A씨는 건국대병원에서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거짓말을 태연스럽게 했다. 거짓말 탓에 구급차 운전기사, 구급요원 등이 줄줄이 감염됐다. 자가격리자 B씨는 답답하다는 이유로 집 앞에 텐트를 치기까지 했다. 목숨을 걸고 메르스와 싸우는 의료진을 격려하기는커녕 그 자녀를 왕따시키고 의료진 가족에 대한 ‘신상 털기’까지 하는 부끄러운 시민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낮은 시민의식과 일탈은 분명 문제지만, 정부와 보건 당국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메르스 사태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의 보고에서 급박함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1년 전 세월호 참사 때에도 초기 보고가 잘못돼 재앙이 됐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주위 사람부터 이상한 점은 없는지를 챙기고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피의자의 행적도 파악한다. 메르스 사태에서는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이 간과됐으니 환자와 격리자들이 전국을 휘젓고 다닌 게 당연하다.

처음에는 오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복지부는 일반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복지부는 국민의 생명이 아닌, 병원의 수입 감소를 걱정했을 것이다. 환자가 거쳐간 병원을 알아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정부는 첫 확진환자가 나온 뒤 18일 만에야 병원을 공개했다. 번질 대로 번진 다음에 공개했지만, 이것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세 때문에 떼밀려서 그렇게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최경환 당시 총리대행은 “박 대통령이 지난 3일 ‘병원을 공개하라’고 했다”고 두 차례 말했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들은 거의 없다. 대통령의 지시를, 나흘 동안이나 무시하는 간 큰 장관과 청와대 수석은 없다. 복지부는 메르스 제2의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을 통제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범인이 들어가도 잡을 수 없는 삼한시대 소도(蘇塗)와도 같은 신성불가침한 곳이었다.

그 뒤에도 정부는 나아진 게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충북 청주의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송병훈 삼성서울병원장을 질책했다. 질책하고 싶었다면, 대통령이 전날 삼성서울병원 인근 대모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병원을 찾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메르스와의 전쟁’을 총지휘하는 병원장을 왕복 4시간이 넘는 청주까지 부른 것을 잘했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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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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