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 사람과 향기] 선현들의 삶 스토리텔링을 입는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선현들의 삶 스토리텔링을 입는다

입력 2012-02-02 00:00
수정 201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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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드라마를 많이 보는 국민도 드물다. 많은 시청자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황금시간대는 대부분 드라마로 채워진다.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시청자들의 흥미를 잘 이끌어 내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 사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지구촌 가족을 우리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나 그 가운데 많은 드라마는 흥미 중심으로 제작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잡한 가족관계와 비정상적인 남녀관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잡고 있다. 드라마 내용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도 비판은 하면서도 눈길을 쉽게 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니 보는 대로 흉내 내면서 배워 가는 시기에 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드라마들을 보면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생각하면 걱정스럽다.

얼마 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반포 과정을 다루었던 드라마만 해도 그렇다. 드라마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한글창제 반대 세력들을 커다랗게 부각시켰다. 그러니 한글 반포의 위대함이나 고마움보다 그 반대 세력들의 실존 여부와 척결 과정에서의 폭력적인 장면들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자연스럽게 더 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세종대왕의 넘쳐나는 아이디어, 추진력 있는 리더십, 백성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 등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훌륭한 덕목들은 거의 전달되기 어려웠다. 드라마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우리 역사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요즈음은 사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사극이 흥미와 재미도 있어야겠으나 그것을 보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지구촌의 인기몰이에 성공한 대장금을 비롯한 드라마들에는 단순 흥미를 넘어선 감동적인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왜 사극마저 흥미 위주로 흐르는가? 이렇게 된 책임의 일부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는 기록자료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창작자들이나 일반 국민들은 한문이라는 언어적 장벽에 부딪혀 전통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록자료를 다루는 사람들이 흥미도 있으면서 교훈적인 이야기 소재들을 발굴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한국국학진흥원을 포함한 관련 기관들이 이러한 일에 충실하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조선 시대 도망친 노비를 추적하는 사람들에 관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폭력과 갈등이 부각되었다. 과연 조선사회는 그렇게 잔인한 사회였을까? 여기서 관련 기록 하나를 소개한다. 경상도 예안에 살던 노비 주인 김택룡(1547~1627)은 어느 날(1617년 12월 19일) 도망간 노비를 잡았다. 그러나 노비를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인두질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노비 구실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일정 금액의 손해 배상만 받고, 그 가정을 보호하는 쪽으로 해결을 한다. 재산으로서의 ‘노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선현들이 남긴 많은 기록자료 속의 한 예이다. 우리는 실제 이러한 문화전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하여 조선은 가난하고 힘든 세월을 500년 넘게 지속하면서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 사회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힘의 원천이 한국국학진흥원에만 해도 34만점이나 되는 고서와 고문서와 같은 기록자료 속에서 숨 쉬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을 창작하는 분들이 역사나 전통 기록자료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선현들의 아름다운 삶이 드러날 수 있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곧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옛 자료의 스토리텔링화 사업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선현들의 아름다운 삶이 스토리를 입고 현대인들의 삶 속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늘어나길 소망한다.

2012-02-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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