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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모든 것이 미끼다/박상숙 산업부 차장

[데스크 시각] 모든 것이 미끼다/박상숙 산업부 차장

입력 2011-04-12 00:00
업데이트 2011-04-1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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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삼겹살을 사와 집에서 뜯어 보니 겉과 속이 다르다. 먹음직스러운 일등급 고기는 전면에만 올려져 있을 뿐, 안에는 척 보아도 식욕을 떨어뜨리는 불량육이 포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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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숙 산업부 차장
박상숙 산업부 차장
보기 좋은 것들을 위에 올리고, 작고 못난 ‘허섭스레기’들을 깔아놓는 미끼전략에 당했다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미끼 상품은 특정 상품 가격을 큰 폭으로 내려 한정·한시적으로 파는 품목이다.

대형마트들이 무한 경쟁을 벌이면서 소비자를 유인하는 미끼 상품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라면이 가장 흔했지만 요즘 금값으로 대접받는 삼겹살뿐 아니라 골프채도 미끼 대열에 올랐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화제를 뿌린 미끼상품이라면 ‘통큰 치킨’을 따라갈 수 없다. 비난과 찬사 속에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린 통큰 치킨 이후에도 1㎝ 더 큰 피자니 1000원짜리 생닭이니 9900원짜리 청바지니 하는 제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싼 제품을 찾아 대장정을 나섰다가 빈손으로 되돌아오는 소비자들이 허다하다. 싸다는 것만을 내세울 뿐 정확히 몇명의 소비자가 그 제품을 손에 넣을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고객들을 유인하고 보자는 미끼 상술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싼 까닭이다. 물론 업체들은 수개월 전부터 치밀한 준비 끝에 내놓은 ‘착한 가격’의 상품이라고 항변하지만, 스스로도 겸연쩍은 표정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미끼는 만연한 사회현상이다.

최근 기름값 인하 소동을 보자. 단지 ‘정유사 기름값 인하’라는 제목만 보고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들은 낭패를 겪었다. 싸게 살 수 있다는 들뜬 마음만 가지고 갔을 뿐 직영점과 자영점의 차이, 정유사 카드 유무 등을 몰랐기 때문이다.

정부의 성의 표시 요구에 정유사가 모처럼 결단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포장을 뜯어낸 삼겹살처럼 기대와는 한참 멀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낚시질’이다. 유행어 하나를 더해 ‘낚시질의 종결자’는 현 정권이 아닐까 싶다.

동남권 신공항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최근 두 후보 지역의 사생결단식 경쟁과 경제성 논란에 없던 일로 했다. 대국민 사과 형식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앞서 세종시 공약 논란에 이어 신뢰에 금이 갈 대로 갔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조성도 제목과 세목이 다르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신공항 백지화 이후 영남 달래기 차원에서 ‘과학벨트 쪼개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분산배치에 대해 “과학도시가 아니라 벨트니까 길게 배치할 수 있다.”는 궁색한 말장난이 나올 정도다.

통큰 치킨이 문제가 됐을 때 몸소 원가 조사까지 하며 ‘미끼 상품’이라는 의견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던 청와대 수석은 요즘과 같은 ´미끼 공약´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치킨이나 기름값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면 그 점포나 주유소를 다시 안 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부나 대통령의 약속은 차원이 다르다. 봉건사회에서도 군주의 말은 땀과 같아서 한번 흘리면 돌이킬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국가 지도자의 언행은 파급력이 막강하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물며 국민과의 약속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 파기가 가져올 부작용은 극심하다. 국민 갈등과 국론 분열을 야기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신뢰의 상실이다. 공적 신뢰가 추락하다 보니, 이웃나라 방사능 공포가 한반도를 덮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은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흔쾌히 믿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 불안은 가중되고, 불안을 이용하는 총체적 미끼 전략에 사회가 현혹되는 것은 아닌지 자못 우려스럽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국가발전의 관건은 사회적 신뢰자본에 있다고 했다. 믿음은 국가의 현재를 작동시키는 에너지이자 미래를 형성하는 성장동력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인가, 미끼인가.

alex@seoul.co.kr
2011-04-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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