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베이징 올림픽과 상처받은 동심/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베이징 올림픽과 상처받은 동심/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입력 2008-08-16 00:00
수정 2008-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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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기간 중국의 신문사들은 매일 최소 한차례씩 전에 없던 회의를 하고 있다. 분야에 상관없이 팀장급 이상은 전원 참석해야 하는 회의다. 베이징의 한 주요 신문사에서 산업분야를 담당하는 A씨는 “올림픽 기간 좀 쉬어 볼 요량이었지만, 매일 회의에 참석하느라 꿈을 접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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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운 베이징특파원
이지운 베이징특파원
이 회의는 오늘의 ‘권장 보도’내용이 무엇이고, 보도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공지하고 주지시키는 자리이다. 민감한 시기에 자칫 나가서는 안 되는 기사가 보도되면 해당 신문사는 ‘줄초상’을 감수해야 한다.“회의가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고 한 중국기자가 귀띔한다.

‘보도 불가’로 판정난 뉴스 가운데 하나가 ‘개막식 립싱크’다. 립싱크 논란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사라졌다. 남방신문(南方報網)이 ‘관계 기관이 중국 국민과 세계 각국에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평론을 실었지만 지금은 바이두(百度)같은 검색 포털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이 가수의 립싱크에 엄격한 나라라는 것이다.2005년 중국 국무원은 ‘영업성연출관리조례(營業性演出管理條例)’를 내고 “립싱크는 관중을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두차례 어기는 공연사나 기획사는 영업허가를 취소한다.”고 했다.

가수 장나라는 중국에서 팬미팅을 하다 중국어 노래를 립싱크로 불러 중국 언론의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당시 장나라 측은 앞선 공연으로 목이 심하게 쉬어 립싱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고 사과해야 했다. 중국 언론들은 ‘인품있는 행동’이라고 칭찬했다.

이른바 ‘짝퉁 개막식’ 논란에 말들이 많으니 특별히 말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상처받을 동심에 대한 안타까움은 금할 수가 없다.

실제로 ‘거창쭈궈(歌唱祖國)’를 부른 양페이이(楊沛宜)는 목소리라도 낸 데 대해 영광스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훗날 ‘얼굴이 못나’ 세계가 주목한 조국의 자랑스러운 행사에 나설 수 없었음을 깨닫게 됐을 때, 어떤 상처를 받게될지 상상조차 망설여진다. 얼굴이 예뻐 대신 무대에 선 린먀오커(林妙可)에게는 벌써부터 연예계가 손짓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상처받을 동심이 양페이이 하나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개막식 립싱크의 영향은 용모에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더 클 수 있다. 일단 보도가 통제됐으니 4억명에 이르는 중국 청소년들은 당분간 모르고 지내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세계의 수많은 청소년들은 어떤가.“그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도 얼굴이 못나 숨어있어야 한다니….”절망할 수도 있다.

더욱이 “국익을 고려해 출연을 교체했다.”는 게 중국측의 해명이니, 용모가 떨어지면 ‘애국 전선’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줄까 우려된다.

짝퉁 개막식에 파묻혀 뒤섞여 있지만,‘가짜 발자국’과 ‘가짜 목소리’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폭죽이야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예술적으로 선택했다면 중국측의 판단일 뿐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짜 목소리는 큰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베이징올림픽이 인류와 올림픽 역사에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기자가 만난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선전부 왕후이(王惠) 부장은 “4억의 중국 청소년들에게 올림픽 정신을 일깨워가고 있다. 어떤 대회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숫자”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제는 올림픽 정신에 앞서, 국가 이익에 앞서 한 어린이 개인에게도 존중 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일깨울 중요한 때를 맞았다. 출연자 교체가 한 정치국원의 지시였다 하니, 중국 지도부는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사과하는 일을 진지하게 고려했으면 한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2008-08-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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