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기 칼럼] 아프간 철군의 나비효과/평화연구소장

[황성기 칼럼] 아프간 철군의 나비효과/평화연구소장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21-09-22 16:52
수정 2021-09-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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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기 평화연구소장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탈레반의 카불 점령, 미군 철수에 대한 북한 반응은 미미했다. “미국이 진정한 인권과 ‘인도주의 수호자’라고 선전하면서 다른 나라 내정에 횡포무도하게 간섭한 ‘인권범죄’”라는 북한 외무성 논평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중국, 러시아 당국자나 언론의 미국 비난을 인용하는 ‘전언’이 대부분이다. ‘미 제국주의자들’의 ‘부당한’ 아프간 20년 전쟁에 큰소리로 포효할 법했으나 북한의 자제는 뜻밖이다.

쫓기듯 카불공항을 이륙하는 비행기에 오른 미군을 보면서 평양 지도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혹자는 한국, 미국과 싸우지 않고도 이긴 것 같은 심리적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전문가는 1975년 사이공 함락과 2021년 카불 점령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미군 철수를 보고 북한이 고무됐을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한다. 어느 쪽이든 양쪽 모두이든 북한의 절제된 반응은 평양이 아프간 사태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신중하게 따져 보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아프간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중국 견제 집중과 인도·태평양 군사력 강화로 수렴할 것이라는 데 일치한다. 8월 31일 미 철군 시한 보름 전쯤 나온 미 의회조사국(CRS)의 ‘새로운 미중 전략 경쟁’은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국가와 아프간 등 서아시아 등 2개의 지역 분쟁에 뒀던 전략 비중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낸다. 카불을 떠나는 미군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비춰 보면 쫓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전환 배치 지역을 찾아 예정을 좇아 이동하는 모습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국이 유럽과 인도·태평양, 동북아 동맹국에 대한 압력을 키울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국익을 앞세워 개입을 줄여 나가는 대신 중국을 압박하는 민주주의 연합과 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따라서 아프간 철군 직후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한 우려가 나왔을 때 미국이 즉각 부인하고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즉 주한 미군의 재배치나 조정은 가능해도 북한이 바라는 철수는 있을 수 없으며, 거꾸로 미국이 바라는 한국의 역할은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 힘이 빠진 미국의 공백을 한국과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필리핀 등이 채워 줄 것을 미국은 요구해 올 것이다. 오커스(AUKUS)가 그렇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구이든 한미의 결합은 보다 단단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중 압박 동참 요구는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매김돼 있는 양국이 그 이하의 관계로 격하하는 일은 중국의 대한국 외교 셈법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한미 결속에 비례해 중국에 대해 가지는 레버리지 또한 커져야 하는 만큼 차기 정권의 대미, 대중 외교는 훨씬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문제는 비핵화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북핵은 풀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미와 대화를 차단하고 있는 북한을 북미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현재로선 중국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 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려 왕 부장 체면을 구기게 했지만,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데리고 나오겠다면서 다자협상 등을 카드로 제시할 수도 있다.

미국은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 고개를 숙여서까지 북핵 협력을 애원하진 않을 것이다. 각 전선에서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고 균열을 일으켜 급기야 미국이 비핵화를 정책 후순위로 돌려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프간 미군 철수가 한반도 정세, 특히 비핵화 프로세스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보다는 부정 쪽이 크다.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 시즌2가 벌써 시작됐다는 징후도 보인다. 지난 4년간의 ‘불안한 평화’가 코로나19가 끝나면 깨질 수 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보유국 지위 인정에 매달린다면, 그래서 비싸게 핵을 팔아먹을 수 있는 ‘비핵 버스’에 올라타지 못하면 대북 제재 울타리에 갇혀 고립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장기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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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이후 북한은 유연한 대미 전략을 짜되 핵시설 재가동이나 전략무기 발사 같은 자충수를 두지 않아야 한다. 남한의 대선 이후도 기회다. 2018년 평창을 뛰어넘는 지렛대를 만들도록 남북이 지혜를 짜내야 한다. 미국을 견인하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 말고 뾰족한 수는 없다.
2021-09-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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