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퍽퍽한 삶 추슬러본 설 고향길…/박록삼 정책뉴스부 기자

[지금&여기] 퍽퍽한 삶 추슬러본 설 고향길…/박록삼 정책뉴스부 기자

입력 2012-01-28 00:00
수정 2012-01-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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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 정책뉴스부 기자
박록삼 정책뉴스부 기자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4일 서울 용산역 앞길에서였다. 꼬불꼬불한 라면 가닥 등속이 고춧가루와 함께 벌겋게 섞여 있었다. 아마도 전날 저녁 어느 취객의 술안주였거나 쓰린 속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해장음식이었을 게다. 뜨끈한 것들은 이미 길바닥 위에서 꽁꽁 얼어붙었다. 고향을 다녀와 찬 바람에 웅크린 채 종종걸음치며 앞서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비켜갔다. 그들처럼 피해 가려던 찰나 손 잡고 함께 가던 아들이 멈춰 서서 “이게 뭐예요?”라며 물어왔다. 그 뻔한 것을 궁금해하며.

뭐라고 답할까 궁리했다. 퍽퍽한 삶에 고향을 찾지 못한 이의 설움이 통음과 어우러져 뱉어낸 것일까 추측해 봤다. 서울 올라와 허덕거리며 사는 못난 것들도 고향에 가면 모두 귀한 아들딸이다. 어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로 쉼없이 부엌과 안방을 오가며 식혜며 생선·고기·나물·부침개·떡 등을 먹어 보라고 권하고, 짐짓 무심한 표정의 아버지는 맛나다 싶으면 자식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 놓는다. 설령 속의 것 몽땅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 내용물이 라면 가닥 같은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민족의 명절 설이다. 고향을 다녀오지 못한 이의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나 고향을 다녀온 이의 속 역시 매한가지로 부글부글한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자식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보다 아르바이트에 더 매달려야 하고, 용케 졸업하고 취직한 자식은 비정규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어렵사리 정규직이 됐더라도 오르기만 하는 전셋값·집값에 대출금 한도를 헤아리다 결국 서울 외곽으로 밀려난다. 희망의 근거를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자식들은 늙은 부모가 뿜어낸 따뜻한 기운만으로 잠시나마 버틸 수 있다. 오래오래 버텨 내려면 세상이 이들의 삶 앞에 희망의 구체적인 얼굴을 보여 줘야 한다. 그날 귀경길, 다소 진부한 감상이기에, 또한 짙은 처연함을 담고 있기에 여섯 살 아들에게 차마 못한 뒤늦은 대답이다.

‘저것은 서글프고도 치열한 삶의 흔적이다. 다들 이렇게 살아간다.’

youngtan@seoul.co.kr

2012-01-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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