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노란 봉투/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란 봉투/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2-01-13 00:00
수정 2012-01-1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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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편지봉투를)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터인데./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라도 언제 오신다는 말을 먼저 썼을 터인데.(한용운, 당신의 편지)

마크 트웨인은 애정, 의리와 관련 있는 편지에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작가 브레트 하트는 오랫동안 트웨인의 답장을 기다리다 못해 편지지와 우표를 넣어 보내면서 답장을 독촉했다. 얼마 후 엽서가 왔다. ‘편지지와 우표는 받았습니다. 봉투를 줘야 부칠 게 아니오.’ 웃음이 절로 나는 익살이다.

편지·서장(書狀)·서류 등을 넣는 종이주머니로 통칭되는 봉투(封套)는 편지 봉투가 원조다. 서장용 봉투는 특수한 원지(原紙)로 크고 기품 있게 만들어 사용했으나 우편제도의 실시로 작고 우아한 봉투로 바뀌었고 요즘에는 규격화된 봉투를 쓰고 있다. 한때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거꾸로 기재해 우편물이 보낸 사람한테 되돌아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겉봉에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인쇄된 봉투가 선보인 계기였다.

봉투의 용도는 다양하다. 편지 봉투보다는 ‘돈 넣는’ 봉투가 더 낯익다. 부의(賻儀) 봉투, 축하연 봉투, 월급 봉투, 촌지(寸志) 봉투, 십일조 봉투 등. 은행의 계좌에 월급을 넣어주기 이전에는 노란 봉투에 십원, 오원까지 계산해 담은 월급을 받았다. 노란 봉투의 향수다. 빨간 봉투의 풍습도 있다. 세뱃돈 봉투다. 중국에서는 설이 되면 전통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자식에게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에서 붉은 색 봉투에 돈을 넣어준다. 베트남에는 빨간 봉투에 신권으로 소액의 지폐를 넣어 주는 ‘리시’라는 관습이 있다. 우리나라도 세배 때 아이들에게 떡이나 과일을 내주다 세월이 흘러 돈 봉투로 바뀌었다.

사람끼리 마음과 정, 그리고 작은 정성과 선물을 담는 ‘하얀 봉투’의 의미가 어쩌다 이렇게 ‘검은 봉투’로 전락했는지 모르겠다. 뇌물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봉투 외에 사과박스, 쇼핑백도 등장했지만 편지 봉투의 좋은 기억을 앗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의 돈 봉투 폭로로 우리 정치권이 신음하고 있다. 돈 봉투 얘기에 신물이 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2-01-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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