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외규장각 도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외규장각 도서/이순녀 논설위원

입력 2010-01-08 00:00
수정 2010-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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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한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 권의 책을 전달했다.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권 가운데 ‘휘경원원소도감’이었다. 고속철 테제베(TGV) 계약과 외규장각 반환의 빅딜을 추진했던 정부로선 더할 나위없이 반가운 선물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교류 방식에 의한 영구 대여’ 원칙에 합의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는 미테랑 대통령이 들고 왔던 한 권에 불과하다. 당장이라도 도서 전부가 반환될 것 같았던 분위기는 미테랑 대통령의 귀국 직후 돌변했다. 국내에선 무조건 반환이 아닌 대여 방식에 대한 반발이 거셌고, 프랑스에선 대통령의 도서 반환에 항의하는 비난이 들끓었다. 고속철 계약을 따낸 뒤 느긋해진 프랑스는 ‘영구 대여’에서 ‘시한부 대여’로 말을 바꿨고, 동등한 가치의 문화재 교환 전시를 요구하는 ‘등가원칙’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면서 협상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2001년 양측 민간 협상단이 ‘맞교환 방식’에 겨우 합의했지만 격렬한 반대 여론으로 무산됐고, 이후 반환 협상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자 시민단체가 나섰다. 문화연대는 2007년 1월 프랑스 법원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프랑스 법원이 지난 연말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약탈 여부와 관계없이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유의 국유재산이라는 판결이다. 프랑스가 사법적 절차를 통해 해외 유물을 되돌려준 전례가 없다는 점에 비춰 볼때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최근 이집트 고분벽화를 본국에 돌려주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인 시점이어서 한층 실망스럽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외규장각 도서를 3층 비공개 열람실에 보관하고 외부 공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회가 도서관을 방문해 열람을 요청했을 때도 수차례 거부 끝에 겨우 수락하더니 공개된 도서도 원래 합의된 것과 다른 종류를 내놓았다고 한다. 한국인 서지학자 박병선씨가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도 도서의 가치를 몰라보고 중국실 한쪽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번 프랑스 법원의 기각 판결로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계기삼아 양국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반환 협상에 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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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2010-01-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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