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북정권 아닌 북동포 지원은 이어져야/유승주 지구촌한가족운동본부 이사장

[발언대] 북정권 아닌 북동포 지원은 이어져야/유승주 지구촌한가족운동본부 이사장

입력 2009-12-17 12:00
수정 2009-12-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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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분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의도, 난방도 없이 잠들어야 하는 사람들 생각이 난다. 필자는 지난 몇년간 서울시 시의원으로서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지원사업에 동참해 북한 동포들의 실생활을 생생하게 접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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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주 지구촌한가족운동본부 이사장
유승주 지구촌한가족운동본부 이사장
정부차원의 대규모 쌀·비료 지원처럼 북핵문제 진전과 연계시킬 수밖에 없는 사항도 있다. 그러나 민간 차원의 인도지원사업은 다르다. 몇천억원이 소요되는 정부차원 지원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그것이 북한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하여 북한정권의 ‘버티기’를 돕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남쪽에도 굶는 사람이 많은데, 뭐 북쪽에 못 갖다줘서 안달이냐고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OECD 회원국이고 개도국에 대한 공공개발원조(ODA) 공여의 의무를 지고 있다. 이만큼 살면서 가난한 이웃을 돕지 않으면 국격이 서지 않는다. 대북지원은 ODA 총액 속에 포함시킬 수 있으니 일석양조다.

이 시간도 하나로 흐르고 있는 한반도의 산, 강, 바다처럼 남과 북은 싫건 좋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난번 임진강 무단방류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남북당국 간에 방류에 대한 사전 통보 합의만 제도화되어 있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물을 막 보내도 문제지만, 안 보내도 문제다. 만약 북이 임남댐(금강산댐) 수문을 닫으면 당장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인 팔당댐 수질이 악화된다. 한강 수질을 한 급수 올리는 데 무려 1조원이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다.

이처럼 이왕 함께 협조하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라면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상생공영이란 현정부 대북정책의 목표일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도 일의 대소경중은 정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고래를 잡아야 할 떡메로 새우에 불과한 민간차원의 인도지원사업까지 무작위로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찬바람도 부는데 민간지원단체들이 하루속히 북한동포들의 곁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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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주 지구촌한가족운동본부 이사장
2009-12-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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