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나타난 근대도시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대전역이 생겼고, 이 대전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대전 도심의 씨앗이 됐다. 이어서 1914년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선 철도가 대전역에서 출발하게 되면서 대전은 자연스럽게 남한의 교통 중심지가 되었다. 대전의 정체성은 사람이 다니는 흙의 길이 아니라 기차가 다니는 쇠의 길(철도)에 따라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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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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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철길이 대전에서 갈라진 것처럼 일제강점기 일본은 차가 다니는 국도도 대전을 중심으로 호남선과 경부선이 만나도록 했다. 경제개발의 상징인 고속도로 역시 대전에서 호남선과 경부선이 만난다. 이렇듯이 기차와 자동차 길로 인해 형성되고 성장한 대전 사람의 정체성은 자연히 근대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책 제목처럼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세계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한 가지 방법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역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를 찾아내는 작업으로 내가 사는 곳, 내가 활동하는 공간에 어떠한 역사가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역사성을 회복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옛길을 찾아서 되살리자는 것이다. 도시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옛 마을과 이들 사이를 이어 주던 길들을 찾아서 복원하자.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면서 잊혀진 역사를 찾아볼 뿐만 아니라 잊혀진 사람과 정신을 되찾아 보는 방법은 현 시점에서 상당히 현실적이고 유효해 보인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전 주변에 철도가 생기기 이전에도 길은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들이 있었다. 조선 후기 김정호가 전국을 걸어서 순례하며 만들었다는 ‘대동여지도’를 보면 회덕·진잠·유성 등과 같은,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는 땅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땅이름뿐만 아니라 길도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대전의 중심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 들판에 가까웠고, 오늘날의 대전 주변 지역에 큰 마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전 주변에 있는 공주·청주·옥천·금산 등을 연결하는 길들이 오늘날 대전의 중심부 지역을 가로질러 나 있는 것을 옛 지도는 보여 주고 있다.
옛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걷는 것이 주요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과는 다른 관점에서 길들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능하면 평지로 길이 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곳에서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려면 반드시 산을 넘어야 한다. 산을 넘기 위해서는 두 마을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길을 찾아야 하고, 힘을 덜 들이고 넘으려면 다시 산줄기의 가장 낮은 부분을 찾아서 연결해야 했다. 산줄기의 가장 낮은 부분, 그곳이 산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을 이어 주는 고갯마루가 된다. 이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것이 우리 옛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것은 산 정상을 오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요즈음 산에 간다면 대부분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을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정상을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이에 비해 고갯마루를 걷는 옛길은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며,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길이다. 대전 주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도시에는 이러한 옛길들이 있었다. 이런 옛길을 다시 찾아 걸어 보는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2009-08-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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