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미국과의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흘 뒤인 7월27일 북한은 외무성대변인 담화에서 6자회담을 거부하고 우회적으로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했다. 유엔제재를 주도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오바마 행정부는 6자회담이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마주 보며 달리던 두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북핵위기는 충돌국면에서 또 한 차례의 협상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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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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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적어도 올 가을부터는 대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9월 말에는 ‘150일 전투’의 성공적 마무리를 자축하는 축제분위기가 연출될 것이고, 10월6일 평양서 치러질 북·중 수교 60주년 행사를 통해 북한정권이 안정돼 있다는 것을 과시할 것이다. 결국 ‘150일 전투’의 성공과 북·중관계의 강화를 바탕으로 내부를 단속한 북한이 본격적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역시 북핵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어야 할 이유가 있다. 내년 5월 개최될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때문이다. 5년에 한 번 열리는 NPT 평가회의는 조약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장래를 평가하는 회의인데, 북한은 NPT 회원국으로서 이 조약에서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이란이 북한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북핵폐기와 북한의 NPT 복귀는 핵비확산 체제가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특히 ‘핵무기 없는 세계’를 정책비전으로, 러시아와 추가 핵군축에 합의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NPT 체제의 유지는 중요한 정치적 이해가 걸려 있다.
문제는 북한의 대화 제의가 핵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북·미 대화가 가속화할수록 한국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핵문제가 제기된 지난 1990년 이후 북한은 핵을 미끼로 한반도의 안보구도를 바꾸려는 일관된 핵전략을 견지해 왔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처음에는 ‘핵개발’ 자체를 미끼로 북·미 대화를 요구하면서 핵을 가진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 동맹의 폐기를 요구했었다. 핵개발이 노골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는 재래식 무력 감축을 빌미로 같은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북한이 핵무기를 손에 쥔 다음부터는 미국과의 대등한 핵군축 회담을 제의하면서 요구사항도 동북아 주둔 미군의 핵위협 제거로 확대했다.
제2차 핵실험을 통해 김정일 정권의 목표가 핵보유라는 사실을 미국도 확신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없는 세계’를 표방하는 오바마 행정부로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면 반신반의하며 북·미 대화에 응할 것이다.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김정일과 북핵을 인정할 수 없는 오바마 사이의 타협점은 핵무기와 핵시설이 100% 제거됐다는 것을 확인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북핵 폐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대가로 북한은 엄청난 요구를 할 것이고 정치적 업적을 고려해야 하는 오바마 역시 클린턴이나 부시처럼 막판에 북한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할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지금 거론되는 ‘포괄적 패키지’의 기본취지와는 관계없이 주한미군 대폭감축, 북·미 수교, 한국을 배제한 평화협정 체결 등과 같이 한국의 정치·안보적인 핵심이익이 걸려 있는 사항이 될 것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9-07-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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