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끼리 토론하는 걸 보면 꼭 붙이는 수사가 있다.“존경하는 ○○○의원님!”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아마 아무도 존경해 주지 않으니까 자기들끼리 존경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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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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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너무 존경해서 서로 그렇게 싸우는지 ‘개념 있는’ 일반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우리 국회는 권위와 존경을 잃은 지 오래다.그 이유는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그들이 싸움질을 통해 K-1보다 더 많은 재미를,‘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보다 더 많은 스릴과 공포를 선사하려는지 몰라도,우리 국민들은 단지 ‘추함’을 느낄 뿐이다.
이들의 싸움이 더욱 추한 이유 중의 하나는,의원들 자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데 있다.왜냐하면 의원들은 당이나 청와대가 지시하면 그대로 몸을 던져 따라야 한다는 ‘천진난만’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가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타이완이나 이탈리아 의회도 가끔씩은 폭력 장면을 보여주지만,우리처럼 ‘습관성’ 폭력은 없다.이런 ‘습관성 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선 우리나라의 정당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우리나라의 정당은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계층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제도권 내에서 투영하기 위해 생겨났다기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문제는 바로 그 정당을 만든 사람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을 대체할 존재가 없는 데 있다.이념적 동질성으로 생겨난 정당이라면 사람 하나 없어지는 게 문제가 될 수 없겠지만 사람 중심으로 생겨난 정당에서 그 사람이 사라지면 정당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게 된다.원래 이념이란 애당초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중심인물도 사라진 정당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권력에 대한 충성’ 혹은 ‘과잉 투쟁을 통한 선명성’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의원들의 자질에서 찾을 수 있다.도무지 우리나라 의원들은 제도에 대한 의식자체가 없는 사람들인 것 같다.스스로 ‘헌법기관’이라고 부르며 권리를 내세우지만,실제 하는 걸 보면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파괴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제도를 만들기만 하고 정작 그 제도를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회는 가히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국회를 가만히 둘 수는 없다.언론과 시민사회의 힘을 통해서 제도의 매서운 맛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자신들이 신(神)이 아니라 제도의 규제를 받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원칙과 규칙을 지키지 않은 정당에 대해서 우리의 세금인 국고보조금을 삭감하고,기존 집행 부분의 상당부분을 몰수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의원 개개인들에 대한 제재도 중요하지만,정당 차원의 제재가 필요한 이유는 이들 의원들의 행동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곳이 정당이기 때문이다.이렇게 하면 우리의 국회가 개념 있는 국회가 될 수 있을까.솔직히 잘 모르겠다.개념이 없는 사람들은 습관을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새해에는 희망을 가져야 할 것 같다.새해니까.내년에는 제발 ‘개념 국회’를 봤으면 좋겠다.개념 있는 의원들의 개념 있는 국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