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시대와의 불화/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시대와의 불화/구본영 논설위원

구본영 기자
입력 2008-08-06 00:00
수정 200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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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우리의 70·80세대와 친숙한 작가다. 세계적으론 냉전이, 국내적으론 분단이란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을 듯싶다. 학창시절 스탈린의 인권탄압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그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부음을 전한 어제 조간 신문에서 눈에 확 띄는 헤드라인을 발견했다.“러시아 가치 지키려 ‘시대와의 불화’로 살았다”는 제목이었다. 시대와의 타협을 거부한 그의 인생을 퍽 잘 압축한 느낌이다. 그는 구소련 시절 독재자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가 발각돼 10년간 동토의 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독일과 미국서 20년간 망명생활을 할 때조차도 소련에 대한 미국의 이데올로기 선전전의 전위를 맡는 일을 거부했다. 서방세계에 안주했다면 가능했을 안락한 삶을 또다시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시대와의 불화’가 솔제니친과 같은 역사적 영웅을 낳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체제의 사슬이나 이데올로기의 벽 앞에 무력한 개인을 양산해온 게 역사의 비극이다. 냉전 시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인 루마니아의 산골 무지랭이 요한은 본인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게 된다.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과 2차대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독일에서 강제노동 중 아리안족 순혈로 인정받아 수용소장이 되는가 하면 미군 포로로 전범재판소에 회부되기도 했다. 동명의 영화에서 주인공 앤서니 퀸이 열연한, 우는지, 웃는지 모를 명연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석방된 요한이 아내와, 그리고 소련군의 능욕에 의해 태어난 아이와 상봉하는 마지막 장면 말이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픽션만일까. 며칠 전 북한 유학생 남편과 헤어져 47년 동안 수절해온 독일인 레나테 홍(71) 할머니가 평양에 들어갔다고 한다. 남편 홍옥근(74)씨와 재회하기 위해서다. 한 동양인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그녀야말로 시대상황의 희생양이 아닌가. 북한당국이 체제동요를 우려해 동독에서 유학중이던 남편을 소환하는 바람에 생이별했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인생유전이 말년의 솔제니친처럼 해피엔드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08-08-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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