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은행나무/최종찬 국제부차장

[길섶에서] 은행나무/최종찬 국제부차장

입력 2007-12-18 00:00
수정 200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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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99.9%의 노랑으로 물든 은행잎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나는 이 거리의 최고 멋쟁이였다. 눈부신 자태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더러는 부러운 눈길을 던졌다. 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찬사를 보냈다.

수은주가 떨어지면서 겨울을 재촉하는 비바람에 자식처럼 사랑했던 은행잎들이 차례차례 내 곁을 떠나갈 때만 해도 사람들의 눈길엔 그래도 사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한동안 사색에 빠지기도 했다. 떠나가려는 계절에 대한 동병상련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생대 삼엽충의 화석같은 모습으로 쓸쓸하게 서 있는 지금 나는 이 거리의 절대 고독 그 자체다. 모든 것이 떠나가고 남은 것은 빈 가지뿐. 쉼터가 못 되는 곳엔 바람도 새도 더이상 찾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엔 짜증스러움이 담겨 있다. 바람이 날려보낸 검은 비닐이 내 신세를 더 처량하게 만든다. 외로움이 뼛속 깊이 파고든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따스한 아랫목의 풍경이 그립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siinjc@seoul.co.kr

2007-12-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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