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문학제와 지방자치단체/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문화마당] 문학제와 지방자치단체/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입력 2007-07-26 00:00
수정 2007-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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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은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에 자유와 사랑과 예술의 가치를 깊이 인식한 작가였다. 그는 문학인들이 밀집해 있던 서울이 아니라 고도(古都)인 평양에서 자신의 문학적 신념을 소설과 산문에 실어 세상에 내보내곤 했다. 이 글들에서 그는 정치나 역사가 인간 본연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인간이 사회적 존재 이전에 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올해는 그런 이효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매년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하여 태어난 후 100년이 되는 작가들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데, 이 자리에서 필자는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이 정치적, 사회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출생과 성장, 성숙, 죽음을 차례로 겪어나가는 자연적 존재이며 또 그러한 자연적 존재의 삶을 충만하게 영위해 나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흔히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로만 알려져 있는 이효석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과 애착이 생기면서 최근에 필자는 이효석의 장녀인 이나미씨를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다. 이나미씨는 아드님과 함께 창미사(創美社)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두 번에 걸쳐 ‘이효석 전집’을 출판한 분이다.

출판사도 차리고 전집같이 일품이 많이 나가는 사업까지 펼쳤으니 만나 뵙기 전 생각으로는 아주 유족(裕足)하지는 않더라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계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신촌에서 천호동까지 물어물어 찾아가 보았을 때 그분은 단칸 반지하방에서 척추 디스크를 앓으면서 외롭게 지내고 계셨다. 아드님은 중국으로 사업을 하러 가셨다는데 언제 돌아오실지 명확한 기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은 눈치였다.

이나미씨는 한국현대소설 연구자의 한 사람에 불과한 필자에게 작가 이효석을 둘러싼 문제들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효석 문학제에 관한 것이었다.

이효석 문학제는 ‘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문화행사로 지방자치단체와 문학이 조화를 잘 이룬 사례로 손꼽히곤 한다. 그러나 이나미씨를 만나고 나서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연례행사가 외화내빈에 흐르지 않으려면 이효석 문학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더 깊이 숙고해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작가나 작품을 매개로 해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경남 진해의 김달진 문학제, 경북 영양의 조지훈 문학제, 충북 옥천의 정지용 문학제 등은 문학이 사회적 ‘공익’을 창출한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에서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 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문제를 행정편의적으로 해결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을 빌미 삼아 경제적인 이득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래 문학은 정치나 운동 같은 것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오히려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의 기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행정 쪽에서 보면 작가, 작품, 유족, 관련 문학인 등 어느 하나 순탄하게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요행히 ‘사업’이 잘 진척되어 정착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경제적 실적을 거두어 지역민의 지지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난제들로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 보면 축제를 만들려던 것이 계륵으로 변해 버리는 일도 종종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효석은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들에 의해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작가였다. 문학은 이 현대사회에서 환금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제공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것 가운데 하나다.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07-07-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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